매일신문

올해도 물바다, 주민들 '망연자실'

빗줄기가 쏟아진 20일오후 의성군 구천면 미천2리 주민들은 들녘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지난해 9월 태풍 '매미'로 수몰된 논밭이 다시 물바다로 변했기 때문이다.

"수문공사만 빨리 마무리했어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주민들은 지난해 '매미'가 몰고 온 국지성 폭우로 인해 위천제방이 무너져 가옥과 농경지 침수피해를 입었지만 복구 공사가 시작되면서 올해는 비 걱정 안해도 될 것이라며 안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바람은 허사가 됐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지난해까지 '하늘 탓'을 했지만 올해는 '사람 탓'으로 태도가 돌변했다. 제방에 설치한 천동 배수펌프장의 수문공사를 마치지 못해 강물이 수문을 타고 유입된 것. 20일 오전 9시30분쯤 위천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배수펌프장 내 폭 4m 가량의 수문으로 엄청난 양의 강물이 흘러들어 제방 안쪽의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다. 주민들은 "장마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수문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올초 시작된 미천제방 복구공사가 늦어지면서 결국 피해를 키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급한 마음에 농기계부터 대피시켰다는 김칠하(55)씨는 "지난해 가옥과 사과밭 1천여평 등 농경지 침수로 1천만원 이상 피해를 입었지만 지원금은 고작 200만원뿐이었다"며 "늑장 공사 때문에 올해도 물바다로 변했다"고 울먹였다.

농민 김기섭(69)씨는 "이제 겨우 벼가 뿌리를 내릴 시기"라며 "어린 모는 24시간 이상 침수될 경우 대부분 고사하고 만다. 올 쌀농사는 끝장"이라며 허탈해 했다.

이곳 제방공사는 경북도가 2004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사업비 54억100만원을 들여 지난 1월초 발주했다. 경북도 현장 관계자는 "호우에 대비해 임시 조치로 수문을 막아놨는데 수압을 못이겨 누수가 생기면서 농경지 일부가 침수됐다"며 "밤새 펌프를 가동해 물은 모두 뺐다"고 했다.

지난해 태풍 '매미'로 피해를 입은 경북지역 공공시설은 모두 8천815곳에 이른다. 경북도 한 관계자는 "복구공사는 90% 이상 마무리됐으며, 지난주 기준으로 700여건의 공사가 아직 남아있다"며 "절대 공기가 부족한 60여건을 제외하고는 6월말까지 공사를 마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올해는 특히 이른 장마가 예상됐다"면서 "준공 예정일만 따져 어떻게 하느냐"고 비난했다. 또 일부 건설업체들이 한꺼번에 많은 공사를 수주하는 바람에 일부 공사의 경우 뒤늦게 발주해 농작물 침수피해를 키웠다. 주민 이상팔(50)씨는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일부 구간의 경우 건설업자가 늦게 시공하는 바람에 제방이 범람, 도로 유실 및 농경지 침수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울진군 서면 소광리 917번 지방도도 임시 가도가 유실돼 차량통행이 전면 통제됐고, 성류굴 앞 임시가도 역시 물에 잠겨 근남면 수곡리 주민들이 구산리쪽으로 우회하고 있다.

주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수해복구 공사. 장마 전에 공사를 마쳐야 하나 아직 공사 중인 곳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길이 68m 울진군 서면 소광교 공사의 경우 지난 3월에야 착공했고, 오는 11월쯤 마칠 예정이다. 울진군은 착공이 늦은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청송.김경돈기자, 의성.이희대기자, 울진.황이주기자

사진:20일 새벽 내린 집중폭우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감문1리 일대 수확이 한창인 참외하우스 단지가 침수되자 한 농민이 허탈한 표정으로 참외를 건져나오고있다.김태형기자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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