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으로 행정 수도를 이전하는 일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대선과 총선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대통령과 여당은 이제 그 공약을 지켜야만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표심을 의식해서 신행정수도 건설에 찬성한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도 충청권을 의식한 나머지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사실을 상기해 보자. 이제 정치권은 한 네티즌이 제기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발언을 뒤늦게 발견하여 국민투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둘 다 눈앞의 정치적 타산에 빠져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하고 그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신행정수도건설계획은 수도권의 행정기관의 이전 수준이 아니라 청와대, 국회, 법원을 이전하는 형태의 천도 수준으로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16대 국회에서 특별법으로 통과되었으니 국민투표는 필요 없으며, 향후 국민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이지 여부도 국회에서 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들은 한나라 당에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당론이 무엇인가부터 밝히라고 압박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천도 수준에 이르는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논의가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한나라당 등과 같은 정치권의 논의에 한정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미 신행정수도건설 결정의 절차적 부당성에 대하여 법학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서울시장과 의회, 수도권 도시들이 인위적인 서울 공동화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 지역이외에도 강원, 경북, 전라도는 물론 대구 부산 광주 등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신행정수도건설에 따른 각자의 대차 대조표를 따지고 있다.
신행정수도계획이 구체화 될수록 각 주체 별로 정치적 경제적 실익을 따지는 일기에 바빠지고, 같은 지역에서도 부동산 및 개발 이익에 따라 견해가 달라지는 일은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또한 이해관계의 지형에서 소외된 다수의 지역 주민이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갖지 못하는 일은 신행정수도건설 논의의 허구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신행정수도건설공약은 분명히 정치적 득표를 위한 제안이었으나 그 배경에는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라는 논리를 깔고 있었다.
물론 정치하는 사람이 정치적 득표를 위한 공약을 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신행정수도의 이전이 과연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대안으로서 실익이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지금부터라도 깐깐하게 따져 봐야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아도 행정 수도를 이전하는 것만으로는 기존 수도권 집중 효과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없었다.
고립된 지역에 건설되는 신행정수도는 행정 수도가 입지하는 지역에 한정된 개발 효과만 있을 뿐 타 지역으로의 파급효과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세계화, 정보화,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인하여 점점 줄어드는 중앙 정부의 역할은 신행정수도에 기대를 거는 많은 사람들을 더욱 확실하게 실망시키게 될 것이다.
과거와 같이 중앙정부가 민간 부문을 주도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신행정수도에 정부기관이 집중해 본 들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거의 없게 된다.
최근 대구 경북 지역에서도 신행정수도 이전이 이 지역의 발전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 지역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행정수도와 물리적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지방의 저발전은 과거 정권에 의한 중앙집권화 정책, 지역의 배타주의, 낮은 지식 문화 수준에 의한 악순환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심각한 검토를 통해 지역혁신의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신행정수도 건설보다는 지식문화관련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더 효과적일 것이며 정치권의 부담도 적을 것을 보인다.
끝을 모르는 경제 침체 속에서 수십조의 재원이 들어가는 행정수도이전을 논의하는 일이 자칫 동문서답식 논의가 되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전 영 평
대구대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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