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소설을 고르면서

유년 시절 이야기에 대한 나의 갈증은 유별났다.

어른들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귀기울였고, 어린이 신문에 연재되는 동화는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가 읽던 소설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몰래 훔쳐 탐독했다.

그때 접했던 이야기에는 신비로운 세계가 있었다.

그 미지의 세계 속에서 무수한 꿈을 꾸었다.

그러면 내 마음은 늘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미정형의 요상한 모양으로 변해갔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또 하기를 좋아한다.

이야기기의 본질은 소통에 근거한다.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소통은 삶의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하여 주고받으면서 공감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이야기다.

그러니 소통의 원리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내 존재를 확인하고, 타자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인간적인 이해를 가능케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모두 이야기꾼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소통이 실용적인 정보 중심으로 기울게 되면 삶의 향기와 지혜를 잃게 된다.

현실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정보에만 집착하게 되는 세상은 생명이 고갈된 사막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소통들은 대량의 실용적인 정보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정보나 지식이 많다고 해서 인간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차 없는 지식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수면 아래 있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은 그것으로 감지하기 어렵다.

오늘날 미디어에 의한 소통도 인간적인 생명을 지향하고 세상의 굴곡과 떨림을 담으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내 연구실 서가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을 죽 둘러본다.

뛰어난 이론가들의 정연한 논리와 유창한 논변들이 날카로운 칼날같이 느껴진다.

저 많은 정보들에 맹목적으로 다가갔던 나의 근시안이 부끄럽다.

오늘은 내 서가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소설 한 권을 골라 그 이야기 속에 빠져보고 싶다.

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7월부터 '서가에서' 필자가 신재기 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로 바뀝니다.

▨약력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 문학박사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 '창조적 비평의 논리'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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