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당신들의 천국

이라크의 무장괴한에게 납치된 김선일씨는 본인, 가족,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뒤로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에게로 돌아와 대지의 품에 안겼다.

누가 김선일씨를 죽였는가? 미국, 정부, 이라크 무장단체 그리고 바로 내가 아닌가.

이청준씨가 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한센병자(나환자)들의 집단 거주지인 소록도에 현역군인 조백헌 대령이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소록도를 한센병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연일 강제 동원하면서도 언제나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은 당신들의 천국'을 일구기 위함이라며 늘 당당했다.

그런데 막상 천국 건설에 동원된 한센병자들은 그 모든 것을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유는 조 원장이 건설하고자 했던 천국은 한센병자들에겐 결코 천국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살이 썩어 문들어졌을지언정 치료가 끝난 한센병자들이 원하는 것은 소록도 안에서의 보다 큰 방, 보다 나은 식탁이 아니라 한센병자란 올무에서 벗어나 육지에서 정상인으로 정상인과 더불어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이것을 무시한 천국이란, 그 천국을 계획한 조 원장 개인의 천국에 지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아무리 거창한 구호나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할지라도 그 속에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것은 몇몇 개인의 천국일 뿐 그 맞은편에 있는 우리 모두의 천국일 수는 없다는 것.

미국은 세계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이라크 국민들을 위하여 후세인을 몰아냈다.

그런데 정작 기뻐해야 할 이라크인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무장단체를 조직하여 미군과 연합군뿐만 아니라 파병한 국민을 상대로 공격을 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 만들기 원하는 천국, 그것은 이라크인들의 입장이나 처지는 배려함 없이 자신의 계획만을 중요시한 '당신들만의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김선일씨의 희생도 여기에 국한된다.

내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쌓아 간다 할지라도 내 속에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내 삶 속에 타인을 위한 자기 희생과 자기 헌신이 없다면, 내가 추구하는 천국이란 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마저 자신의 도구로 짓밟는 '당신의 천국'일 뿐이다.

송유언(대구중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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