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혼탁한 샤머니즘을 넘어서

내가 사는 곳에서 시내로 나가는 좌석버스의 좌석 앞에는 인생의 진로를 역술인과 상담해 보라는 광고가 모든 자리마다 붙어 있다.

사업과 결혼은 물론 건강, 이사 등 그야말로 인생의 모든 분야를 무소불위로 관장하는 삶의 나침반이 몇 개의 전화 번호 속에 늠름하게 앉아서 호출을 기다린다.

물론 버스 속 뿐만이 아니다.

지하철 광고판에도, 길거리의 전신주에도, 신문 광고란에도, 아니 인터넷에는 아예 독립사이트로 역술이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점, 혹은 무술(巫術)이 언제부턴가 역술(易術)이라는 그럴싸한 용어로 통일되면서 우리 일상 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양상을 띠고 있다.

광고 아닌 기사의 일부로까지 전면에 등장하여 지금은 웬만한 일간지에도 이른바 운세란이 매일 실리고 있다.

마침내 최근에는 지도급 인사들 사이에서도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니 뭐니 하면서 운과 점의 중요성을 믿는 듯한 분위기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가벼운 염려 수준을 넘어선 심각성을 띠고 있다.

점술은 그 표현이 무술이든 역술이든 혹은 굿과 같은 우리 고유의 언어로 나타나는 미신이다.

이 즈음엔 일부에서 이것을 전통문화의 한 부분으로 미화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으나 미신은 미신이다.

1950년대, 60년대에는 미신 추방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발을 붙이지 못했다.

그것이 아무리 우리 문화의 전통적 요서와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비문화적인,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이라면 비판되고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에서 샤머니즘의 타파와 극복이야말로 그 요체라고 하겠다.

합리적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21세기에 굿과 점이 사회 현실의 전면에 떠돌아다니는 이 현상은 해괴하기 이를 데 없다.

나 개인적으로도 샤머니즘의 극복은 문학 비평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작고한 김현씨, 그리고 김병익, 김치수씨와 함께 저술한 '현대한국문학의 이론'(1972년)에는 그 같은 취지가 분명하게 천명되어 있으며, 허무주의의 불식과 더불어 그것은 60년대 4.19세대의 일관된 세계관이자 문화의식이기도 했다.

문학을 업으로 삼고 글을 써온 지 40년 가까운 세월 우리 문학은 이러한 면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제 홀연히 다시 만나게 된 샤머니즘과의 이 무거운 조우는 대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한단 말인가.

샤머니즘은 그것이 보편성의 진리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며 반문화적.비인간적인 것으로 비판된다.

이미 많은 연구가 이와 관련되어 행해졌고, 또 행해지고 있는데, 그 결론은 한결같이 요행과 무책임, 가족 이기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나 있다.

부귀다남, 입신양명과 같은 일종의 슬로건을 그 가치를 압축하고 있는 바, 그것들이 외세(민족적인 것이든 가족적인 것이든)에 대하여 자기를 보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문화와 공의(公義)같은 보다 큰 가치와는 먼 거리에 있었다.

이러한 샤머니즘은 원시 공동체 사회, 혹은 고대 사회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족공동체, 더 나아가 글로벌 시대의 인류 공동체에서는 너무나도 그 가치관이 맞지 않는다.

비록 가벼운 장난기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최첨단으로 개발된 MP3 핸드폰으로 기껏 오늘의 운세나 알아보고 희희거리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얼마나 코믹한 일인가. 사실,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 사이의 이러한 간극사이에 우리 사회의 불안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는 문득문득 사로잡힐 때가 있다.

사회발전도 이제 이같은 파행성을 역동성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합리화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다소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의식과 무의식이 보조를 함께하는 화평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위정자들을 포함한 모든 지도층, 지식인들로부터 비합리적인 파토스의 세계를 열정으로 위장하거나 샤머니즘적 제스처로 말놀이하는, 재미있는 컴퓨터 게임적 승부를 즐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의와 사랑이 조용히 실현되는, 한 단계 높은 가치로 올라서 본다면 얼마나 좋으랴.

김주연(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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