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벽지, 구멍 뚫린 방문, 그을음으로 가득찬 시커먼 부엌, 텅빈 외양간, 짝 잃은 신발, 고장난 텔레비전, 마당에 발목까지 차오른 잡초, 금이 간 장독, 골동품 수집상들이 떼어간 마룻장….
예천양수발전소 하부댐 수몰지역인 예천군 하리면 송월리(새마)를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던 이주민 김복만(77.여)씨는 폐허를 방불케하는 마을이지만 떠나기가 못내 아쉽다.
"조상때부터 뼈를 묻고 살아온 정든 고향이지만 이제는 떠나야겠지요."
보상이 끝난 지금까지 이삿짐을 꾸리지 못한 김씨의 남편 박창호(79)씨와 아들 형근(40)씨가 이 마을에 남은 마지막 이주민이다.
16가구 중 15가구는 이미 마을을 떠났다.
채씨는 인천, 위씨는 상리면, 정씨는 하리면으로 떠나갔다.
"올 가을 추수가 끝나면 아랫마을이나 용문면으로 이사를 떠나려고 집을 구하고 있다"는 김 할머니는 "서울 사는 딸이 근처에 와서 살라고 하지만 정든 고향을 떠나기가 싫고 예천이 좋아 그냥 새집을 알아보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시집와서 50년간 농사짓고 살다 보니 농사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조그마한 텃밭이라도 달린 집이 있으면 막내 아들과 함께 농사지으며 살고 싶어."
아궁이 앞에 앉아 마른 볏짚을 태우며 장마로 눅눅해진 방에 불을 넣던 김 할머니는 아직 장가 못간 아들이 못내 아쉬운지 "며느리 하나 구해달라"며 졸랐다.
"시어머니와 자식 4남매를 키운 이집을 떠나려고 하니 여간 허전한 것이 아니야. 돈도 싫어. 지금이라도 고향을 안 떠났으면 해…."
정든 친구가 그리워 며칠 전에는 이사간 친구집을 찾았다는 김씨는 "이 곳에 뼈를 묻을 수 없게 된 것이 몹시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보상비가 많이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김씨는 올해는 장가 못간 아들 형근씨를 꼭 장가 보내겠다며 잠시 이주에 대한 허전함을 잊는다.
예천.마경대기자 kdma@imaeil.com사진: 어머니 김복만씨와 아들 형근씨가 아궁이에 불을 넣으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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