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세계적인 냉전 체제가 와해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주변에 묻혀 있던 것들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페미니즘일 것이다.
당시 학위 과정에 있었던 필자는 한 세미나에서 페미니즘 문학비평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비판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여성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던 것은 물론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 문학비평이나 창작에서 페미니즘은 매우 인기 있는 담론으로 부각했고 문학상업주의와 맞물려 적잖은 저술과 논문들이 줄을 이어 발표되었다.
필자의 서가에 꽂혀있는 것만 해도 그럭저럭 열 권이 넘을 정도다.
페미니즘사전까지 비치하게 되었다.
어줍잖지만 한국문학비평 전공자로서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인데도, 사실 대부분 정독하지 못했고 어렴풋이 그 윤곽만을 파악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에는 페미니즘이 비판하고 있는 핵심인 남성우월주의가 짙게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녀평등과 그것의 실천적 운동을 신념으로 내세우는 페미니즘은 남녀가 생물학적인 최소한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성차별은 남성 중심사회와 문화가 만들어 낸 왜곡된 해석의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여성성을 긍정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적극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개략적인 방향이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성인 젠더(gender)가 남녀차별을 만들어 낸다고 파악한다.
나는 지금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내 옆에 아내로 어머니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내를 생각해 본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다른 가족을 위해 팔십 평생을 허리가 굽도록 일하셨다.
아내는 직장에 돌아와 가사노동으로 자기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
남자인 나는 이런 어머니와 아내에게 무엇을 도와 주었는가? 네 몸에 배인 남자답다는 권위와 짜증만을 앞세웠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페미니즘, 그것은 우선 거창한 이념보다 '인간을 위한' 생활 신념과 실천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 같다.
신재기(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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