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곳을 아시나요-돌탑 쌓은 하진학 할아버지

달서구 파산동 산 1번지. 이 곳의 이름은 궁산이다.

산의 모습이 활(弓)을 닮았다고 해서 '궁산'이라고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자궁(子宮)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도 한다.

산 높이는 해발 253m. 그렇게 높지 않으면서도 낙동강을 굽어 볼 수 있고 산세가 좋아 인근 주민들의 등산로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얼마 전부터 또 다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쌓기 시작한 돌탑들 때문이다.

사실 산행에 나서다 보면 등산로 어딘 가에서든 돌 무더기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이곳은 좀다른 돌 무더기다.

속모를 깊은 사연이 깃든 것이기 때문.

성서 계명대 뒤편에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오르다 보면 반갑게 등산객을 맞는 이 곳의 돌탑들은 삐뚤삐뚤 제멋대로의 모습인 자연석을 하나하나 쌓아올린 것. 2~3m 높이의 돌탑들마다 등산객들의 소망이 켜켜이 쌓인 듯하다.

등산로 입구 주변에서 만난 마을주민들도 언제부터, 누가, 몇개나 이 곳에 돌탑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이 좋으면 됐지, 저 탑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무에 그리 중요하랴.

하지만 분명 이 돌탑들은 주인이 있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누군가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진학(74'달서구 신당동) 할아버지가 탑을 쌓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7월. 병마와 싸우던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그 뒤 아무 인연도 없는 이 곳에서 매일 아침과 저녁, 산에 올라 공들여 탑을 만들었다.

손이 닿지 않으면 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돌을 얹었다.

이렇게 4년 동안 할아버지의 땀방울로 만들어진 탑은 모두 108개.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를 잊을 수 있을까 해서였지. 애써 만든 탑을 누군가가 무너뜨려 놓았을 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많을 때는 90여개가 무너졌을 때도 있었지. 하지만 이렇게 건강도 유지하고 마음의 상처도 많이 아물게 돼 좋아."

현재 할머니(68)와 손자(14'중2년), 손녀(13'중1년)와 함께 기초생활 수급권자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돌탑은 살아 있음을 믿게 하는 증거였다.

그러기에 하루라도 빠짐없이 산을 올라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일부 등산객이 일부러 허물어뜨린 탑을 보고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가 상처나듯 마음 아팠던 탓에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는 쪽지와 연락처를 남겨두었다.

다행히 범인은 잡혔고 그 뒤 탑은 온전했다.

그러나 21일 오후 산을 찾았다가 또 한번 허물어진 탑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기력도 없는데…."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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