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자살 대국

일본의 할복자살은 엽기적이다.

의식을 행하듯 집행하는 사무라이들의 전통 할복은 그 와중에서도끝까지 명예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애 쓴다.

최후 진술하듯 멋진 시 한 구절을 읊고, 결행 후에도 눈을 부릅뜨고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 돕기 위해 친구나 충직한 부하가 입회해서 할복 순간 목을 쳐 할복자가 극심한 고통에 무너지지 않도록 한다.

◇ '자결의 미학'으로 미화되기도 한 할복문화 영향인지, 일본은 장수대국이면서 자살대국이다.

지난해 일본의 자살자는 전년보다 7% 늘어난 3만4천427명. 인구 10만명당 27명꼴로 사상 최고였다.

지난 10년간 평균 자살 증가율 0.44%, 10만명당 20명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이다.

이유는 건강 비관, 생활고, 가정, 직장문제 순이었다.

자살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가장 많았으나 증가율은 30대가 가장 높아 주목됐다.

◇ 일본이 자살대국이지만 이를 능가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보건복지부가 2002년 기준 지난 10년간의 통계를 조사 분석한 결과, 한국의 자살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18.1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 가운데 헝가리(24.3명), 핀란드(20.3명), 일본에 이어 4위였다.

그러나 연평균 자살 증가율에서 한국은 1%로 일본과 멕시코(0.61%)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최근의 수치를 대입하면 상황은 더 나쁠 것으로 추정된다.

◇ 올해는 사회지도층 인사의 한강 투신이 잇따랐다.

탄핵정국이 소용돌이치던 지난 3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몸을 던졌고, 4월엔 박태영 전남지사, 6월엔 이준원 경기도 파주시장이 한강에 투신했다.

또 '쓰레기만두' 파동에 휘말린 한 만두회사 사장도 뒤를 이었다.

한강은 아니지만 지난해 8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지난 2월 안상영 부산시장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최근엔 일가족 자살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1982년만 해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6.8명 정도의 저(低)자살국이던 한국이 20여년 사이 고자살국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정치적으로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온다던 그 새벽도 구경했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겠다던 시대도 겪어봤고, 이제 별놈의 보수보다 좋다는 진보 시대, 참여 시대까지 왔는데 무엇이 문제여서 깜깜한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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