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두 바퀴에 싣고 온 슬픈 천국

강덕치 글·사진/현암사 펴냄

문명이 아로새겨진 중동, 종교의 성지이기도 한 그곳. 하지만 새 천년 중동의 모습은 끊이지 않는 총성과 흥건한 핏물이 물결치는, 평화조차 숨 쉴 수 없는 곳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그런 차에 평화를 갈망하는 한 종교인이 석 달 동안 자전거로 중동의 곳곳을 돌아본 성지순례기가 나왔다.

'두 바퀴에 싣고 온 슬픈 천국'은 이집트에서 시작해 시나이 반도, 요르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거쳐 예루살렘까지 저자가 자전거와 함께 한 중동 여행기다.

한마디로 중동에서 정말 보고 나누고 귀기울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속 깊은 여행기인 셈이다.

그런데 이 '위험한' 곳을 여행하는 길벗으로 저자는 왜 자전거를 택했을까. 아마도 광속까지 이기려는 현대의 속도전쟁에서 한껏 비켜선 자전거야말로 화약 연기에 가린 중동 사람들의 진솔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탈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이 중동의 문명 및 현실보고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오랫동안 골몰해온 평화운동의 한 궤적으로 읽히는 이유다.

이 책에는 전쟁의 사각지대에 놓였지만 꿋꿋이 삶을 일구는 수많은 중동인들이 출연한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돼지를 키우며 사는 카이로의 자발린, 물레바퀴를 돌리며 오이를 따는 소녀, 가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밭에서 일하는 소년, 사막의 풍란처럼 삶의 뿌리를 하늘에 두고 세상을 떠도는 베두인…. '지구의 화약고'라는 오명 뒤에 가린 중동 사람들의 깊은 한숨과 눈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오아시스처럼 간직한 웃음소리와 온정이 책갈피마다 묻어난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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