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가게'찾으면 모두가 천사

100인 운영위원회

지난 8일 오후 대구MBC 광장. 연일 35℃가 넘던 폭염은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숨이 턱 막히는 열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짜증이 날 만도 하건만 사람들의 입가엔 호기심 어린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7, 8일 이틀 간 열린 '난치병 어린이 돕기 나눔 장터'. 60여개의 부스에는 시민들이 가져온 옷가지와 책, 그릇, 아이들의 장난감까지 온갖 물건들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가게'가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5천여명의 시민들이 찾았고 판매 금액의 30%를 기부해 모은 금액만 550만원이 넘었다.

행사장 한쪽에는 이효리, 이현우, 태이, 이적, 앙드레 김 등 인기연예인 18명의 애장품이 경매에 부쳐지고 있었다.

DJ 이대희씨와 이수진씨가 물건의 소개와 경매 진행을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아름다운 가게 '100인 운영위원회'의 일원이다.

운영 위원들은 행사장 곳곳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부스를 둘러보며 물건을 사거나 자원 봉사에 여념이 없다.

운영위원인 대구보건대 박은규 교수는 "아름다운 가게는 자발적으로 이뤄진 사회.환경적 혁명입니다.

이 곳에 올 때마다 나누는 물질보다 기쁨, 보람 같은 정신적인 가치들을 더 많이 얻어갑니다.

"

아름다운 가게는 재활용이 가능한 생활용품을 기증받아 판매수익금으로 자선사업을 벌이는 비영리 재활용품 전문매장이다.

지방에서는 광주에 이어 두번째로 지난 4월 동아쇼핑센터 9층에 대구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아름다운 가게 대구본부 '100인 운영위원회'는 아름다운 가게 운동이 대구에 뿌리내리도록 도우면서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모임이다.

'아름다운 100인의 아름다운 네트워크'로 불리는 운영위원회는 대구에만 있는 독특한 운영 체계. 교수, 사업가 및 패션디자이너, 택시기사, 법무사, 상인 등 각계 각층의 인사 91명으로 구성됐다.

영남여성정보문화센터 윤순영 회장은 "아름다운 가게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순수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라며 "대표가 존재하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이 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물품수거, 수선, 분류, 판매, 홍보, 자료조사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활동천사', 손때 묻은 소중한 물건을 기증해주는 사람들은 '기증천사', 아름다운 가게에 기금을 후원해주면 '후원천사'라고 이름짓는 식이다.

운영위원들은 세 가지 역할을 모두 해내는 한편 각자 전문적인 영역에서 더 큰 역량을 발휘한다.

"물건을 기증하고 후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눔'과 '순환'이라는 아름다운 가게의 가치를 널리 전하는 것이 더 큰 임무라고 볼 수 있죠. 이 곳은 저희들의 힘만으로 꾸려지는 곳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패션디자이너 박동준씨의 설명이다.

그녀는 자신이 기증한 물건으로만 개인 코너를 여는 '100인 릴레이' 1호였다.

패션디자이너답게 다양한 모자, 신발, 액세서리 등을 내놓아 큰 인기를 끌었다.

김세원 한길교육문화원장은 아름다운 가게 운동의 홍보 메신저를 자임했다.

"저는 이 운동의 취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소를 갖고 있죠. 문화원에서 꾸준히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홍보 자료를 나눠주는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

법무사인 이정숙씨는 "운영위원들은 소리없이 일하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돕고 있습니다.

저는 행사 진행이나 운영 전반에 관한 모니터링을 주로 하는 편입니다.

" 그녀는 자원 봉사자들의 실수나 주차 문제까지 세심하게 살펴보고 잘못을 거듭하지 않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눔과 봉사에는 1 빼기 1을 영(0)이 아니라 둘(2)로 만드는 힘이 있다.

그 진리는 이들에게도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윤순영씨는 "60세가 넘으면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잠자는 시간을 줄이더라도 건강할 때 자원봉사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옳다고 느꼈죠. 봉사를 하면 할수록 세상에는 눈에 띄지 않아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박동준씨가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인지 자원봉사 모임에 나오는 남성분들은 얼굴이 얼마나 선하고 밝게 빛나는지 다 천사 같다니까요.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착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느낍니다.

"

하지만 세상에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시작한 지 100여일밖에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판매 수익금이 필요한 만큼 모이지 않는 것이 사실. 지난달 1일 처음으로 열린 수익금 배분식이 끝나고 심사위원에 참여했던 운영위원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500만원의 수익금으로 필요한 곳에 충분히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 윤순영씨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심사위원을 못할 것 같다"며 "다들 어려운 사람들인데 누군가를 선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세원씨는 "별도의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서울에서는 상속금의 1%를 기부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구에서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가 없다는 것은 조직의 구심점이 없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누군가 대표로 책임을 맡는 것보다 모두가 참여하는 인적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자발적으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서 결정하면 된다는 것. 또 운영 위원은 100인이라는 숫자에 구애받지 않으며 적극적 참여 의사를 가진 순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운영위원회의 실무를 맡고 있는 박상규 기획간사가 덧붙였다.

"아직 첫발을 내디뎠을 뿐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공동대표를 선출하고 운영위원회에 각 분과를 설치하는 등 체계를 갖출 계획이지만 현재는 시민들의 열정적인 참여가 더욱 절실합니다.

"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사진: 아름다운 가게 대구본부 '100인 운영위원회 '의 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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