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로 가는 구안 국도변 다부동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유학산의 녹음이 다른 곳 보다 짙고 가을이 되면 단풍 또한 유난히 붉다는 것이다.
단풍이 핏빛인 것은 1950년 9월 2일부터 15일까지 이곳에서 조국을 구하고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까? 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이자 낙동강 전투의 교두보인 다부동 전투의 참상을 돌아본 조지훈의 종군시(從軍詩)다.
학이 놀았다 하여 유학산(遊鶴山)인 이곳에서 반세기전 우리는 피 흘려 조국을 지켰다.
치열한 전투에서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한채 전투에 참가한 용사들은 오직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청춘을 이산에 묻었다.
다부동 전투에 대해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다부동 전투의 승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구가 있을까? 아니 대한민국이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이 다부동 전투의 승리를 발판으로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이 가능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매년 9월이면 백발의 노병들이 유학산 기슭 6.25 전적기념관 앞에 모여 먼저 간 전우의 명복을 빌고 나라사랑의 의지를 다지는 다부동 전투 추모 행사를 갖는다.
올해 제54주기 추모제는 7일에 갖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그때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을 헤치며 달리던 노병의 마음만큼은 못하지만 그들이 왜 꽃다운 청춘을 유학산 기슭에 묻어야 했는가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다부동 전투에서 산화한 무명용사의 유골 259점을 발굴하여 1997년 무명용사 묘지를 만들어 놓은 것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토요휴무제가 시행되고 있는 지금, 자녀들과 함께 호국 전적지를 찾아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을 올려보면 어떨까. 요즘 신병 입대자의 20% 가량이 6.25 전쟁 발발에 대해 남쪽이 북침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접할 때 최근세사의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로 잡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무가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홍영선(경상북도 사회복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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