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줌마를 읽으면 트렌드가 보인다-(10)이혼과 재혼

이혼이 '흔한' 시대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그 절반이 되는 400여 쌍이 이혼 도장을 찍고 갈라섰다.

2쌍이 결혼하고, 1쌍이 이혼하는 시대다.

그리고 현재 결혼한 부부 8쌍 중 1쌍은 재혼부부다.

한때 금기시되던 이혼, 재혼이 다반사가 됐다.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이혼은 없다'의 저자 주디스 S 월러스타인은 이혼을 "마치 불이 난 고층건물에서 생존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뛰어내리는 것과 유사하다"고 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절박하도록 만들었을까.

7년 전 이혼한 서유진(가명·49)씨. 그녀는 만나자마자 "이혼하지 않았으면,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서씨의 경우 남편의 무능과 외도·폭력 등 최악의 '이혼 조건'을 갖추었다.

시댁이 다소 부유한 덕에 여유 있게 시작한 결혼생활은 남편이 도박에 손을 대면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집을 팔아 단칸방으로 옮겼다.

"곧 도박에 손을 떼는 것 같더라구요. 새로 시작한 사업도 그런대로 잘 돼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되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형편이 나아지니까 이번에는 딴 생각을 하는 거예요."

외박을 일삼는 것이 여자가 생긴 눈치였다.

"외박했을 때 잔소리를 했더니, 이젠 또 손찌검까지 하는 겁니다.

"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아빠랑 목욕탕을 한 번도 안 가본 애가 어디 있겠어요?" 애들이 아빠랑 살고 싶지 않다고 했고, 서씨도 이제 믿을 데라고는 애들밖에 없다고 생각해 둘을 데리고 나왔다.

위자료는 고사하고, 전세금마저 내 줘 처음 시작할 때 무척 힘들었지만, 이젠 스킨케어숍을 운영하며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주위에서 재혼도 권하지만, 서씨는 단호했다.

"이제 다시는 결혼을 안 할랍니다.

"

최희정(가명·40)씨는 한 달 전 이혼했다.

그녀는 눈물부터 떨구었다.

최씨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였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그녀의 남편도 술을 많이 마셨다.

퇴직 후에는 혼자 마시는 날이 잦았고, 급기야 병원신세까지 졌다.

퇴직금까지 거덜나면서 집안 형편은 엉망이 됐다.

"이 시기만 넘으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남편의 병은 더 악화됐습니다.

" 나중에는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7년을 그렇게 버텼지만, 주위의 권유로 이혼을 결심했다.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다.

아픈 사람을 버려두고 나온 죄책감 때문이다.

"병만 낫는다면 지금이라도..."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유 없는 이혼이 있을까.

취재 중 만난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나이가 들수록 더 절박해 보였다.

폭력과 외도 등 전형적인 이혼 사유들이었다.

그러나 젊을수록 부부의 성격 문제가 강했고, 좀 더 충동적으로 느껴졌다.

이영미(가명·31)씨는 "결혼은 환상이었다"고 잘라말했다.

연애할 때의 감정은 사라지고, 시댁에 시달리고, 똑같이 되풀이되는 하루 생활에 대한 염증을 느꼈다.

무엇보다 남편의 변화가 실망스러웠다.

사소한 문제도 부부싸움으로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간 계속 싸우기만 해 보세요. 같이 살 수 있겠어요?"

대구.경북이 가진 남성위주의 보수성과 가부장적인 관습도 이혼을 부추기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씨는 "여자는 밥이나 하고 빨래나 하라는 식인데, 그럼 여자는 뭐란 말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변화에 민감하게 발맞춰 온 여성 권익과 아직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지역의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부조화이다.

과거에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행복 또한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구.경북의 남편도 시대의 변화를 읽고 정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이혼을 선택한 이들은 '새 출발'에 대한 기대와 의지가 무척 강했다.

대학을 나와 살림만 살던 김이주(37)씨는 "제가 식당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다"고 했다.

이혼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녀문제. 이혼을 꿈꾸는 이들의 대부분이 "애들 때문에 이혼을 못 하겠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이혼 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자녀다.

이혼 후 가장 큰 애로사항이 "몸이 아플 때"와 "애가 말을 듣지 않을 때"라고 했다.

편모가정에 대한 자책감으로 인해 늘 노심초사하는 것이 자녀문제. 이번 여론조사에서 '자녀가 있을 때는 이혼을 삼가야 된다'는 의견이 37.8%에 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재혼에 대한 갈망은 강한 편이었다.

올해 발간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부부 중 재혼 비율은 12.6%나 됐다.

10년 전 5.5%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또 1년 전에 비해서도 1% 포인트 늘어나 재혼율은 급증하는 편이다.

재혼에 대한 인식도 과거와 판이하다.

미국인과 재혼해 시애틀에서 거주하고 있는 정은아(40)씨는 "결혼이 모험이듯, 이혼과 재혼도 또 하나의 모험"이라며 "그럴 바에는 더 큰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국제결혼을 택했다"고 했다.

이혼과 재혼에 관대한 미국이라 그런지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삶에 대해서도 "무척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가정행복연구소의 박종욱 목사는 "결혼은 무지개 빛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면서 "극복하려는 노력도 없고, 갈등해소 방법을 몰라 성급하게 이혼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박 목사는 "예비교육을 통해 극복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재혼을 앞두고 있더라도, 이혼의 충격을 벗어나려는 도피가 아니라 충분히 상처를 치유한 이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사진: 재혼을 통해 건강한 재출발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대구의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주관한 재혼 미팅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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