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포클레인 앞에서 삽질

요즈음 우리 마을은 여름 장마가 할퀴고 간 개울둑을 다시 쌓느라 바쁘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삽을 들고 나왔지만 포클레인 한 대가 오니 삽은 할 일이 없어졌다.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 하냐?' 아이들이 쓰는 유행어가 일하던 사람들 속에서 술렁이다가 허탈한 웃음과 헛기침 몇 번으로 잦아들었다.

포클레인이 지나간 자리에 아직 못다한 일이 남아있어 그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갔기 때문이다.

포클레인 앞에서 비아냥의 대상이던 삽이건만 기계가 다 못한 일을 마무리하니까 하나의 작업이 끝나는 것이었다.

삽은 포클레인과 게임이 되지 않는 상대이지만 그래도 서로 도와야 일이 완성되는 공존의 관계였다.

포클레인 앞의 삽은 그보다 먼저 유행했던 '번데기 앞의 주름'이나 '공자님 앞의 문자'처럼 두 말 못하고 깨어지는 게 아니라 변명할 여지가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보는 눈이 훨씬 관대해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나 공자님과 번데기를 대항했던 존재는 아무리 주름 잡고 문자를 써도 번데기와 공자님을 능가할 수 없고 도움이 될 처지도 아니었다.

같은 주제의 말이지만 그 소재를 공자님이나 뻔데기로 등장시켰던 사람들은 가차없는 권력의 처단에 떨며 살았던 왕정이나 군사독재시절의 백성이니 작은 숨구멍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유행하는 '포클레인 앞의 삽'은 공존의 연대와 존재의 긍지를 가지고 세상에 환한 등불을 켰다.

포클레인 앞의 삽은 아무리 힘센 존재라도 혼자서는 일을 다 못한다는 의미를 넌지시 품고 있으니 말이다.

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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