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후진타오 시대 개막

후진타오(胡錦濤.61) 중국 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이 19일 사임한 장쩌민(江澤民.78)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이어 군사위 주석직마저 승계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됐다.

특히 60대 초반인 후 주석이 지난 2002년 당 총서기, 지난해 국가주석직 승계에이어 이번에 군사위 주석직까지 차지하게 됨으로써 국내외에 '후진타오 시대' 본격 개막을 과시하게 됐다.

실제 이날 폐막된 중국 공산당 제 16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16기 4중전회) 에서 군사위 주석직을 승계한 사실이 공개되자 중국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을 '후진타오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총명하면서도 온화하고 겸손하다는 평을 듣는 후 주석은 일찍부터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의 뒤를 잇는 중국 제4세대 지도자로 꼽혀왔다.

그러나 후 주석은 1992년부터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고 1998년 이후 국가부주석을 역임했지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이는 린뱌오(林彪),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의 부침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후 주석의 가족관계만 해도 부인 류융칭(劉永淸) 여사 외에 자녀관계도 잘알려져 있지 않다.

롱촨(龍川) 후씨 44대인 후 주석은 1942년 12월 상하이에서 태어났으나 본적은 안후이(安徽)성 지시(績溪)현이며 어린 시절을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보냈다.

1959년 명문 칭화(淸華)대 수리공정과에 입학한 그는 1965년 졸업후 1968년까지 정치 지도원으로 재직했으며 1966년 이후 10년 간 계속된 문화대혁명에 참가했다.

간쑤(甘肅)성 건설위원 시절 간쑤성의 최고 권력자 쑹핑(宋平) 당서기의 눈에 들어 승진가도를 달리다 쑹핑의 천거로 1982년 후야오방 총서기에 의해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지도자로 발탁됐으나 태자당과 갈등으로 구이저우(貴州) 성 당서기로 좌천되기도 했다.

그러나 쑹핑은 당 원로들에게 후 주석을 제4세대 후계자로 추천했으며 덩샤오핑은 1992년 제14차 당대회에서 후 주석을 장쩌민 이후의 지도자로 선정하고 정치국상무위원으로 발탁했다.

후 주석은 이어 1998년 3월 국가 부주석직에 오른 데 이어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직도 차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차세대 지도자'의 지위를 굳혔으나 장쩌민을 자극하지 않으려 정치적 언행을 극도로 자제하는 등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개혁보다는 안정적인 개혁을 추구해온 후 주석의 과거행보를들어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후 주석의 향후 행보도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국내외 정책에서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후 주석이 명실상부한 권력1인자로 굳히게 된 상황에서 그의 강인한 성격과 국수주의적 성향, 중화패권주의 지향 등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상황을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후 주석은 지난주 제 50차 전국인민대회에서 연설을 통해 서국식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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