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지방 죽이긴가 살리긴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그동안 없지 않았으나 지난 17일의 금융연구원 토론회는 남다른 주목을 받았다.

정부 산하 기관의 토론회인데도 강도높은 정부 성토장이 됐기 때문이었다.

이날 참석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정책에 대해 "같은 사안을 두고도 부처마다 말이 다른 '갈지자' 정책" "말로만 시장경제일 뿐 안을 들여다 보면 반(反) 시장경제"라고 맹공 일색이었다.

특히 국회 예산정책처장은 쫓겨날 각오를 하고 말한다며 "시장경제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민생과 평등을 내세울수록 시장은 민생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질타했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 정부가 초조감 때문인지 과거의 모든 문제를 다 꺼내놓고 실험해 보는 양상"이라고 혹평했다.

정부 산하기관의 토론회에서 예상치 못한 신랄한 비판이 나온데 대해 이헌재 부총리는 다음날 국무회의서 해당 장관들에게 사과를 하고, 금융연구원에 경고를 했으나 이미 구긴 체면은 어쩔수 없었다.

정부와 그 산하기관인 금융연구원의 마찰 만큼이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도 어긋나가기는 마찬가지다.

최근에 표면화된 양상을 한번 살펴보자. 지난 8월30일 전국 16개 시.도지사협의회는 "정부의 지방분권 추진상황이 시대적 요구와 국민적 기대에 못미치는 데다 현재 추진중인 내용이 지방분권 본래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중앙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 시.도지사들은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 "또다시 토론만 하다가 그치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고 지적하고, △실질적 자치 재정권 확보를 위한 세원 재배분 △경찰 보조원 수준으로 축소해 추진하고 있는 자치경찰제의 정상화 등을 촉구했다.

서울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지자체 재정을 중앙정부에 의지해야 하는 시.도지사들이 이처럼 강도 높게 성명서를 내는 것은 보기드문 일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시.도지사들이 참여정부가 열성적으로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에 지지를 표명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정부를 비판하고 자기들의 입장만 내세웠으니 대단한 의기투합(?)인 셈이다.

하지만 이 의기투합도 보름만에 깨어지고 말았다.

정부가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수도권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수도권에 규제해 왔던 공장 신.증설을 대폭 완화키로 하자, 서울 인천 경기를 제외한 13개 시.도지사들이 지난 16일 이에 반발해 반대 공동성명을 냈기 때문이었다.

13개 시.도지사들은 "지방살리기 특별법 제정후 가시적인 성과는 없고 수도권 규제부터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선(先) 지방육성, 후(後) 수도권 관리' 원칙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중앙정부와 광역시.도 자치단체의 갈등, 광역시.도 자치단체들 끼리의 마찰도 문제지만 정부의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대한 중소 시.군 자치단체들의 반발은 더욱 심각하다.

중소 시.군 자치단체들은 정부가 공공기관을 수도권과 충남을 제외한 11개 광역시.도에 산업기능별로 집단적으로 이전해 혁신도시를 만들 계획임이 드러나자 국토균형개발의 본질에 역행한다며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중소도시 시.군 자치단체들은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공공기관 이전이냐"고 반문하며 "공공기관을 중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에 이전해 인구 감소로 죽어가고 있는 중소 도시나 군 단위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고 반대논리를 펴고있다.

중소도시 시.군 자치단체들은 아직은 집단적 반발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구상이 가시화되면 큰 저항으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정부의 입장이 다르고, 광역자치단체, 중소시.군 자치단체의 처지가 서로 달라 마찰과 시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정책에 대한 시각 차이가 이처럼 크고, 신뢰가 없어서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서울시는 수도이전반대 시위를 놓고 "관제다" "관제 아니다"로 정면대결 중이고, 추석 후엔 한나라당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대안이 제시된다.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이 아무리 좋은 대안을 낸다해도 '정권의 명운을 걸고' 밀어붙이는 정부와의 충돌은 불가피해지고 지방자치단체들의 혼선도 더욱 가중될 것이다.

이렇게 가다간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에 이어 "자치단체장 못해 먹겠다"는 소리까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종성(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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