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자살 사회'

알렉산드리아에는 클레오파트라 집권 시절 자살 명분을 가르치는 '자살학교'가 있었다.

사회의 공인으로서 치욕을 당했을 때 자신의 소신이나 약속을 죽음으로 지킨다는 게 그 주요 명분이었다.

로마제국에서도 자살은 죄악시되지 않은 면이 있었다.

영웅적인 자살, 명예 회복을 겨냥한 자살이 있었으며, 사형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하면 독약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13세기 들어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살은 타살보다 죄가 무겁다고 주장한 이후 사정이 크게 달라지게 됐다.

▲단테의 '신곡'에는 자살자가 타살자보다 책고가 가혹하게 나타나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에는 서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살은 엄청나게 죄악시돼 왔다.

몸에 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게 유교의 신체관이었기 때문이다.

이 가치관이 지배했던 조선 시대는 물론 오랜 세월 동안 그 전통이 미덕으로 이어져 오기도 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죽은 사람은 1만1천명으로, 하루 평균 30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명당 24명으로, 1983년 이 통계 조사 이래 최고치이며, 전년보다 4.9명이나 늘어났다.

2002년에 이미 경제개발기구(OECD) 30개 회원 나라 중 헝가리.일본.핀란드에 이어 네 번째(18.7명)였는데, 이젠 세계 최고 수준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자살에 의한 사망률은 1998년 외환 위기 때 19.9명까지 치솟았다 하락했으나 2001년 이후 다시 3년째 급증하고 있는 셈이지만, 이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자살은 20~30대 사망 원인의 1위이며, 절반 가량이 20~40대라는 사실은 무얼 말하는가. 생명 경시 풍조도 큰 문제이나 경기 침체에 따른 취업난.생활고.이혼 증가 등이 더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자살은 당사자에게 순간적으로 고통을 면탈시켜 줄지는 모르나 주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고통을 짊어지우는 죄악이다.

인명의 신성함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요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는 자살을 개인 문제가 아니라 가족.사회.국가의 문제로 봐야 한다.

생명 경시 풍조를 바로잡으면서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살을 강요받는 인사들이 많아질까 두렵다.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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