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설> 부시 재선과 중동 장래

중동 아랍 지도자들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 앞다투어 축하를 보내면서도 그가 집권 2기에는 역내에 전쟁과 피가 아닌 평화와 안정을 심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이란에 대한 위협 등 힘에 의존하는 일방적 밀어붙이기 정책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조화와 조정의 세련된 정책을 구사해주길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속내는 각기 정권 안보에 대한 불안과 부시 집권 2기 정부의 강압적 민주개혁 공세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역내 각 정부의 조심스런 충고와 주문, 체념 섞인 축하와는 대조적으로 길거리에는 아직 반미(反美)정서가 팽배하다.

지식인들과 일반 국민들은 이라크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주도한 지도자가 재선된데 불안과 공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시가 재선 성공을 자신의 중동 정책에 대한 '백지수표'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중동 문제의 요체는 전후 이라크의 안정과 민주주의 정착, 팔레스타인 분쟁의항구적 해결이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란, 시리아 등 역내 국가들과 미국 관계의 원만한 귀결도 핵심 과제다.

중동 아랍권은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존 케리 후보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 행정부의 기존 중동정책에 획기적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의빌 클린턴 전 행정부가 중동평화 과정에 적극 개입했던 전례를 기억하며 케리 후보의 당선을 내심으로 바랬던 것이다.

부시가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함에 따라 미국의중동정책 궤도가 크게 수정될 것 같지 않다는게 분석가들의 중론이다.

극단적 회의론자들은 부시의 집권 2기 4년간 "또하나의 중동 수도가 파괴될 것"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회의론의 배경에는 물론 이라크 침공과 전후 치안 불안의 장기화, 불투명한 이라크 민주화 전망, 뒤늦게 판명된 전쟁 명분의 허구성 등 부시 정권의 대(對) 테러리즘 선제공격 독트린에 대한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독립국 창설을 공개 촉구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부시 정권은 역대 정권들과는 달리 아랍의 장기 독재정권들을 지탱해주지 않겠다고공언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집권 1기 내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정책을 묵인했으며, 로드맵 이행 지지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구호만 요란했던 중동 민주화 구상도 이라크 해법의 표류로 흐지부지해졌다.

부시 정권은 오히려 이라크 전쟁 승리를 선언한뒤 그 탄력을 이어가기 위해 시리아와 이란에 대해 공격 위협을 가하고, 수단 문제를 제재와 힘으로 해결하려 하고있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부시의 재선으로 이란과 시리아, 수단 가운데 최소한 하나가 미국의 집요한 공세에 시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부시의 재선에 가느다란 희망을 거는 지식인들도 없지 않다.

카이로의 시리아 정치분석가 왈리드 카지하는 부시가 앞으로는 자신의 업적에신경을 쓰면서 중동분쟁의 본질적인 문제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의 일부 신문들도 4년간 시행착오를 겪은 부시 대통령이 2기에는좀더 원숙한 정치를 구사하지 않겠냐며 애써 자위했다.

쿠웨이트 총리 보좌관 사미 알-니스프도 현지 언론 회견에서 부시가 포괄적 중동 개혁을 약속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개 국가 공존구도를 천명한 사실을 지적하며 그가 이를 실행에 옮길 것으로 기대했다.

이스라엘과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미국이 세운 이라크 임시정부, 미국의 걸프지역 최고 우방인 쿠웨이트는 부시의 재선에 기쁨과 환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있다.

이스라엘은 부시가 재집권한 후에도 정착촌 철수 등 아리엘 샤론 총리 정부의대팔레스타인 정책에 큰 압력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느긋한 표정이다. 국민들도강력한 반(反)테러리즘 독트린을 표방하는 부시를 지지하고 있다.

쿠웨이트의 경우, 국가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과 입장에 의해 부시의 재선을지지해왔다. 부시 대통령의 부친은 1991년 걸프전을 주도하며 쿠웨이트를 이라크에서 해방시켰다. 현 부시 대통령은 쿠웨이트 안보의 최대 위협인 사담 후세인 정권을붕괴시켰다.

부시의 집권 2기에는 이처럼 역내 국가들간 국가이기주의에 따른 전략관계 재편과 아랍 대의명분의 침식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역내 국가들이 스스로 이같은선택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강압적 개입이 예상되고, 이는 또한차례의 유혈비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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