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기자-유레카 도서관 명예교사를 하면서

어느 날 딸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는 "어머니, 이거 꼭 해 주세요"라며 한참을 보채었다.

무슨 연유로 이렇게 간곡한 바람을 나에게 요구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나도 '책과 좀 친하게 지내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도서관 명예교사를 하게 되었다.

두달 남짓 남은 올해, 도서관 명예교사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도서관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교실 한 칸 크기의 1층 도서관이 교실 두 칸 크기의 4층 도서관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도서관은 새로운 이름도 갖게 됐다.

공모를 통해 지어진 이름은 그리스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의 일화에 나오는 '유레카'. 현대식 인테리어에 다양한 시청각 시설을 갖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거기에는 도서관 명예교사인 어머니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깃들어져 있다.

어머니들은 그 많은 책들을 일일이 묶어 4층까지 옮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1층에 있던 책들이 그대로 4층으로 올라갔을 뿐인데도 노력이 더해진 덕인지 신기하게도 책들이 달라져 보였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폭도 다양해졌고, 구석에 꽂혀 손길 한 번 없던 많은 책들이 골고루 읽혀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조금씩 변해가는 도서관 풍경을 보고 있으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생했던 일들이 보람으로 다가온다.

참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을 다녀간 것 같다.

정말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 그냥 친구 따라 왔다갔다 하는 아이, 만화책만 고집하는 아이, 책을 읽기보다는 빌려 가는 것을 즐겨하는 아이 등. 눈을 동그랗게 뜨고 꼭 잘못이나 저지른 것처럼 살며시 "아줌마 대출증 없어도 책 빌릴 수 있어요?"라고 묻고는 "다음부터는 꼭 챙겨서 다녀라"는 대답을 듣자 환하게 웃는 아이들, 이 모든 아이들이 유레카 도서관을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도서관은 새로 꾸미기 전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이용하는 관계로 요즘에는 책 정리하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하지만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진다.

쉬는 시간이 되면 으레 아이들은 한바탕 정신을 빼놓고 간다.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간 뒤 그 흔적들을 정리하고 나서는 "어머니 책 골라 놓았어요?"라며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딸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책을 고른다.

딸아이는 월요일에 엄마가 도서관에 온다고 좋아하지만 나는 딸아이와 책을 통해 생각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집안 일만 하고 있었다면 이런 소중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을까?

요즘 도서관에 앉아 아이들이 책을 고르고 읽는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순간순간 힘들었던 일들로 일그러졌던 표정들이 행복한 웃음으로 바뀐다.

이경희(대구화남초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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