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범어동 풍경-(15)대구지검 특수부(下)

검찰이라고 수사에 백발백중일 수는 없습니다.

되는 것도 있고,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수사는 살아 숨쉬는 '생물(生物)'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다른 수사기관에 비해 확률이 다소 높을 뿐입니다.

얼마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상용차 설비 낙찰비리 사건'에 얽힌 뒷얘기입니다

특수부 수사관들이 한 피의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다가 메모 한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피의자가 로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치권과 대구시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쭉 적혀 있었지요. 국내 정계와 대구시를 주름잡던 인사였던 만큼, 누가봐도 구미가 당길 만한 '물건'이었습니다.

이들이 로비를 받은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면 대구는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떠들썩한 사건이 됐을 겁니다.

검사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날 수밖에요….

8월말에 시작된 수사는 두달 가까이 숨가쁘게 진행됐습니다.

관련자들이 거의 매일 특수부로 소환되었고, 압수수색영장도 숱하게 발부됐습니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연일 밤을 새웠고, 서울과 대구를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밤낮도, 주말도 없었지요.

물론 기자들에게는 수사기간 중 엠바고(embargo·보도금지)가 걸렸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기자는 '큰 건수'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꾀죄죄한(?) 얼굴의 검사, 수사관들이 측은하게 보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끝내 '큰 건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정보였는지, 로비가 아예 없었는지, 이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지요.

결국 검찰은 관계자 10여명을 구속하고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대어'는 그물에서 빠져나가고 '중치' 몇마리만 건지는 형국이 됐지요.

그렇지만 파산한 삼성상용차를 둘러싸고 온갖 비리와 부정이 판을 쳤고, 이를 일거에 척결했다는 점에서는 큰 수확이었지요. 한동안 유력인사들을 잠 못들게 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대구와 서울은 범죄환경이 확연히 다르지요. 서울지검에서는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취사선택을 할 수 있지만, 대구는 정보부재 속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식이죠."

서울지검 특수부 시절 김운용 IOC위원을 구속시켰던 엘리트 검사인 우병우 특수부장은 요즘도 '큰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웬만한 덩치로는 그의 눈에 차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특수부가 할 일이 없으면 대구가 조용하다"고 한다면 말이 되나요?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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