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말 중에 가장 흥미로운 시각은 '행동의 목적성'에 관한 얘기가 아닐까 한다.
동물은 어떤 목적을 두고 행동하는 반면 인간은 현실적인 목적을 앞세우지 않고도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비실용적인 인간의 행동이 수만년 전 영장류(靈長類)들 틈에서 인간의 가지를 뻗어나가게 했다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동굴 벽에 동물그림을 그리는 것은 하등 사냥과 관계가 없다.
그러나 동물을 그리는 인간의 상상력이 다른 영장류와 차별을 낳고 나아가 인간의 엄청난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논지이다
실제로 오늘날도 우리의 행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경제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행위이다.
경제행위가 실용적인 것이라면 문화행위는 비실용적이다.
앞서 말한 논리에 빗대면 경제행위는 동물의 행동 쪽이고 문화행위는 인간만이 갖는 독특한 기질 쪽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화행위를 한없이 무시한다.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인들의 책꽂이에는 교양서적보다 실용서적이 훨씬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자본도 산업을 융성시키는데 비해 문화에 대해서는 그 기반을 닦는데조차 인색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나는, 지난달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비제의 '카르멘'을 보면서 매우 놀라워했다.
대구 시립오페라단에서 하는 정기공연임에도 관람석이 거의 가득 차 있었다.
수년 전만 해도 시립음악단체에서 하는 정기 공연은 관람객의 상당수가 초대권을 가진 단원들의 친지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르멘'의 마지막 대목인 세빌라이 투우장 앞에서 사랑에 불타는 '호세'가 연인 '카르멘'의 가슴에 절망적인 비수를 꽂는 장면에 이르자 관객들은 감동으로 술렁거렸다.
내가 듣기에 출연진의 가창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는데도, 연주가 끝나자 환호의 박수가 오페라하우스의 4층 실내를 한동안 흔들었다.
사실 말하자면 그 감동의 일정부분은 오페라에서라기보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오페라의 수준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페라하우스라는 문화적 기반시설이 한 장르를 일으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요즘 들어 시내 시립도서관들도 스스로 문화의 기반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저께 열린 시립중앙도서관의 '평생학습축제'는 도서관이 더 이상 책의 대여점 구실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평생학습' 단체들이 참가하여 서예, 사진, 수공예 등 문화적 성과들을 축제형식으로 한마당 펼치고 있는데 참여단체나 관람객들도 적지 않았다.
도서관은 종합문화센터의 역할을 맡고 있고, 시민들 역시 그만큼 문화에 목이 말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숱한 '경제행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열악하고 참여자들의 표정은 때때로 초췌하다.
시립오페라단은 뛰어난 가수를 초빙해서 더 나은 공연을 시민들에게 보여줄 형편이 안될 터이고, 도서관 축제도 변두리 시장터의 형편을 떨쳐낼 만한 재정이 없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멀리서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이, 내가 회원으로 속해 있는 '대구소설가 협회'만 해도 일년에 100만원의 지원금을 얻기 위해 서류뭉치를 잔뜩 준비해서 문예진흥원 앞에 대기해야 하는 실정이다.
개별 예술가들에 이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과문인지 모르나 난 지금까지 시(市)가 벤처기업가나 과학기술자들을 육성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작가나 예술가를 직접 후원했다는 소문은 들어본 바가 없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온다.
나뭇가지가 이파리를 떨구고 맨몸을 드러내듯 우리는 헛된 껍질을 벗고 자아(自我)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수록 그의 핏줄 속에 오랫동안 기려왔던 저 삶의 향취들을 만나게 된다.
기쁨과 슬픔, 환희와 탄식, 꿈과 곡절 사이를 오가며 인간적인 면모들과 해후한다.
이럴 때 문화예술은 우리의 가장 멋진 동반자가 된다.
'문화의 기반이 바로 삶의 기반이다'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사회가 척박할수록 문화적 기반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엄창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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