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가을 숲 한가운데

썩은 나무 하나 서 있다

孤高하게 살았던 생이

비명도 없이 서 있는 것은

숲을 뒤척이다

울음을 삼켜버린 저 새들 탓이리

낙엽 지는 숲을 바라보는 저 사내

소리 없이 서 있는 것은

썩어도 넘어지지 않는 저 나무 탓이리

정원근 '나무 탓이리'

새들 탓이라고 쓴다.

나무 때문이 아니라 나무 탓이라고 쓴다.

왜'때문이다'라고 쓰지 않고 굳이'탓이다'라고 쓰고 있을까? 때문과는 달리 탓이란 부정적 현상에 대한 원인과 까닭, 즉 원망을 지시하는 낱말이다.

시인은 지금 나무를 탓하고 원망하고 있는 것, 저 사내의 외로운 뒷모습을 안쓰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포유류 동물의 털 빛깔을 닮은 가을 숲, 잠들고 싶은 그곳을 꼿꼿하게 지켜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차라리 형벌이 아니겠는가.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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