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초청으로 25일 저녁 청와대에서 3부 요인과 여야 4당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만찬회동이 정기국회 개회 이후 냉랭하기만 했던 여야 관계를 '해빙'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남미 순방외교 및 한미정상회담의 성과, 경제회생 대책 등을 주제로 편안한 대화를 이끌었고, 참석자들은 대부분 "좋은 분위기였다"고 평가했다.
청와대측과 여야 참석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일단 이날 회동은 노 대통령이 정상외교 성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였던 만큼, 격한 감정의 표출이나 극심한 의견차이가 노출되지는 않았다.
다소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만찬회동은 노 대통령과 여야 참석자들이 경제와 외교, 남북관계 등 큰 국정의 큰 주제를 놓고 '절제된' 가운데 대화를 주고 받았다는 점에서, 여야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경제와 외교, 남북관계 전망 등 '비(非) 정치적' 분야를 집중 거론하면서도, 여권이 추진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 민생관련입법의 처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권에 공을 넘김으로써 국회의 여야대립이 쉽게 해소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노 대통령은 "4대 법안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정당간에 협의해 처리를 해주시는게 좋겠다"며 "영수회담의 시대는 지나갔다. 대통령이 당을 지휘, 명령, 감독하는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한 것.
노 대통령은 또 민생입법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민생관련 장.단기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켜 달라"면서 "정책적으로 의견이 다를 순 있지만, 의견이 달라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뭔가 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같은 노 대통령의 메시지는 단기, 중기적으로 야당에 던지는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 한나라당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정국의 유동성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 여야간 핵심쟁점에 대해 옛날 방식의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빅 딜'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원내에서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여야의 '영수'가 개입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야가 지지고 볶든 국회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법안을 처리하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노 대통령은 라오스에서 열리는 '아세안+한.중.일' 정상회담과 영국 등 유럽 3개국 순방을 위해 오는 28일부터 정기국회 회기종료 하루전인 12월 8일까지 자리를 비운다.
결국 노 대통령 영향력의 '진공상태'에서 여와 야가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각종 쟁점법안들을 처리하라는 뜻인 셈이다.
조금 시야을 넓게 보면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내년이면 집권 3년차를 맞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야간 일어나는 문제는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구축한다는 메시지로도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표는 회동 후 반응을 유보했다. 다만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대통령이 정당에서 하라는 것을 누가 믿겠느냐"면서 "지금 상황의 골격을 갖춘 것은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을 보내자'는 것에서 나온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손'에 여전히 경계심을 보였다.
한나라당이 이 같은 스탠스를 취한다면 당장 정기국회뿐아니라 이후에도 원내에서 이뤄질 여야 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되리라고 전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노 대통령이 "영수회담 시대는 지났다"며 사실상 제1야당인 한나라당 박 대표의 '존재의 이유'를 희석시키는 의미규정을 함에 따라, 앞으로 박 대표도 어정쩡한 상태에서 정국대응에 임해야 하는 미묘한 처지에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정국은 '4대 입법'을 둘러싼 여야의 협상에서 김원기 국회의장의 중재 역할과 여야 원내대표들의 협상력 여하에 따라 그 향배를 점쳐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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