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 영화 '내 머릿 속의 지우개'란 영화를 봤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김수진을 보며 '기억'이란 문제를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기억'이란 주제는 '매트릭스' '토탈 리콜' 등에도 다 나오는 것이거니와, 요즘 우리영화 또한 그 기억을 상업화하는데 여념이 없는 듯하다. '내 머릿 속의 지우개'에서 최철수는 수진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패밀리마트에서 둘이 처음 만난 상황을 재현하기도 하고 자기가 만든 나무인형도 만져보게 하며 냄새를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진이에게는 시각도 청각도 촉각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카무라 유지로는 자기 책 '공통감각론'에서 인간의 감각을 세가지 부류로 나눈다. 시각·청각 등을 관장하는 특수감각, 촉각 등을 관장하는 체성감각, 그리고 장기의 내장감각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화, 회화, 동화, 철학 등을 종횡무진하며 촉각에 의한 감각통합을 주장한다. 물론 후에 들뢰즈같은 철학자는 감각들 사이의 배치 혹은 분배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영화 속 수진이에게는 감각통합도 감각분배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나카무라 유지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인간에게 눈이 있는 것이 보기 위함이고, 귀가 있는 것이 듣기 위함이듯이 마음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인간에게 마음이 있는 까닭은 시간을 느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나카무라 씨의 촉각론인 셈이다. '공통감각론'은 책 도처에서 요즘 말로 필이 꽂히는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요즘같이 경제적으로나 계절적으로나 스산한 시대에 '시간을 느끼는 마음'의 과정을 새삼스레 곱씹게 만드는 책이다.
영화 속 수진이가 철수에게 "이제 당신에 대한 기억과 마음을 다 잃게 될 거야"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특수감각중심주의에 빠져있는 발언이다. 뇌의 구조는 망가졌지만 체성감각이나 내장감각까지 과연 모조리 파탄난 것일까?
수진이 입에서 유부남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은 수진이에게 시간을 느끼는 마음이 있다는 마지막 신호가 아닐까? 가을이 끝나간다. 내 마음은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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