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지음/홍서연 옮김/르네상스 펴냄
언젠가부터 텔레비전에 식당, 건강을 찾아주는 음식 등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저 '한 끼 때우는 것'에 급급했던 시절을 지나 바야흐로 미각에 오감을 곤두세우는 시대가 온 것이다. 스스로를 '미식가'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프랑스에선 약 180여년 전, 벌써 미식에 대한 이론과 음식 관련 책이 나왔다니 우리보다 훨씬 앞선다. 당시 브리야 사바랭이 쓴 미식의 역사와 관련 지식을 진지하고 재미있게 엮은 책 '미식예찬'(르네상스 펴냄)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저자는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인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해 현미경을 갖다 대며 '놀라운 우주'의 모습을 발견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미식의 세계에 빠져들어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약 58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과학, 예술, 의학 등 온갖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망라돼 있어 지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저자는 책의 목적에 대해 "'미식법'에 과학의 지위를 주기 위해 그 이론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서, 또 '미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정의하고 이 사회적 자질을 대식이나 폭식으로부터 영원히 분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요리에 현미경 갖다대기
지금은 '건강의 적'으로 푸대접받고 있는 설탕은 루이 14세 시대까지 약제사들의 상점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귀한 약제였다. 19세기에 이르면 프랑스인들에게 최우선의 필수식품이 되면서 여유있는 여자들은 빵보다 설탕에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
현대인의 필수 기호식품인 커피는 한 양치기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 양떼가 커피 열매를 뜯어먹은 후 환희 상태를 보이는 것을 보고 커피를 인간의 음식으로 처음 발견한 것.
당시엔 커피 최고의 맛을 찾아내기 위해 찬물에 우리거나 압력솥에 넣어 커피를 만드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알코올 음료를 찾는 것은 사람들의 본능이라고 단정한다. '알코올은 액체 중의 절대군주이며 미각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흥분을 일으킨다'는 저자의 생각이 재미있다.
저자는 미식에 대해 종합적이고 철저한 분석을 내놓는다. 어떤 사전에도 미식에 대한 정확한 견해가 나와있지 않다는 점을 한탄하며 미식은 미각을 즐겁게 하는 사물에 대한 정열적이고 사리에 맞는 습관적인 기호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정치경제적 관점에선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사물들의 상호교환을 통해 여러 나라들을 결합하는 공통된 유대관계라는 독특한 해석도 하고 있다.
▷ 미식가 판별기
그렇다면 미식가는 어떻게 판별할까? 타고난 미식가는 일반적으로 중간 키에 둥글거나 네모진 얼굴, 빛나는 눈, 좁은 이마, 짧은 코, 두툼한 입술, 둥그스름한 턱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하며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이런 자신의 분석이 들어맞았다며 자랑하기도 한다.
또 의사들이 특정 음식을 금하는 것 에 대해 '무용하다'고 설파한다. 환자들은 그들에게 해로운 것에는 결코 식욕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오히려 자연스럽고 유쾌한 감각작용은 건강에 유익하다고 한다.
꿈과 음식에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관찰에 의해 일상식이 꿈을 결정한다는 흥미로운 결론을 낸 것. 약간의 흥분을 일으키는 자극성의 모든 음식물들이 꿈을 꾸게 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검붉은 고기, 비둘기, 오리, 야생토끼, 아스파라거스, 당과류 등을 들고 있다.
▷요리에 숨겨진 역사
저자는 '식문화사'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요리의 철학적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요리는 기술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불의 발견 후 본격적인 요리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리스, 로마, 루이 14세를 거쳐 당시에 이르기까지 요리의 역사를 싣고 있다.
그렇다면 레스토랑이 처음 생겨난 것은 언제일까.
레스토랑이 처음 생긴 것은 1770년경. 파리를 찾은 외국인들이 머무는 여관은 단순히 아주 기본적인 식단만 제공해, 특별히 초대받지 못한 외국인들은 파리의 진미(眞味)를 느끼지 못하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당시에 레스토랑이 처음 생겨났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시간에 알맞은 가격대의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저자는 고기 즙에 익힌 달걀, 가자미, 뱀장어 요리, 아스파라거스 등에 얽힌 일화, 다랑어 오믈렛 만드는 법 등 흥미로운 사례들을 기술하고 있다.
이는 마치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것처럼 당시의 시대상과 음식들이 눈에 보이는 듯 펼쳐진다.
수많은 패스트푸드와 말 그대로 '빨리 빨리' 한 끼 때우는 일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180여년 욕망에 충실하게 답하며 미식을 즐겼던 저자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한 끼를 먹더라도 우주 전체를 생각하고 그 속에 축적된 역사와 철학까지 생각하는 정신적인 여유까지 말이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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