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구 월성동 학산근린공원 산 밑자락에 가면 '송학정(松鶴亭)'이라 불리는 경로당이 있다.
인근 아파트에서 불과 5분 정도밖에 안 걸릴 정도로 가깝지만 산속에 있는 전국유일의 경로당이다.
산에서 청설모가 내려와 나뭇가지 위에서 먹이를 먹고, 산 위자락에는 야생꿩도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천막 주변에는 무, 배추 등을 심어놓은 경작지도 보인다.
노인들은 드럼통에 장작을 넣어 모닥불을 만들고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거나 천막 안에서 막걸리 한잔을 벗삼아 풍류를 즐겼다.
송학정이 만들어진 것은 1996년 여름. 근처 아파트에 사는 노인 몇명이 모여 버려진 탁자, 의자, 소파 등을 주워오기 시작했고, '검정색 간이천막'도 세웠다.
노인들은 "도심 경로당처럼 답답하지도 않고 공기가 좋아 마음이 탁 트인다"는 것으로 산속 경로당을 자랑한다.
초창기 멤버인 박광춘(73·달서구 월성동)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노인회를 만들고 계를 모아 회비를 걷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레 노인들의 공짜 쉼터로 변했다"며 "20여명이 친구를 만나 자신이 결코 혼자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안식처"라고 말했다.
최고령인 이원호(90·달서구 월성동) 할아버지는 "이곳을 알게 된 뒤에는 다른 곳에 가지 않는다"며 "매일 오후 3시쯤 왔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간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송학정은 정식 경로당이 아니라 불법(?)건축물이다.
공원 안의 가건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합법화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빠지지 않고 찾아온다.
'정식 인가를 받도록 도와주겠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헛공약을 하지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나이가 칠순을 넘어 '삶을 관조하는 경지'에 이르다보니 현재 환경에 지극히 만족한다는 것.
아파트 주민들이나 산책나온 사람들이 '피난민 천막촌 같다', '수호지의 양산박 같은 분위기', '노인들은 무엇을 할까"며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모습도 재미있는 풍경이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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