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 돈 잘 내는 회장 할 만한 사람 없어요. 괜찮은 사람 좀 소개해 주세요."
대구·경북체육회 각 40여개 가맹단체들이 올해 4년 임기의 집행부를 마감하면서 새 회장을 물색하느라 바쁘다.
장기간 침체에 빠져 있는 지역 경제 사정을 반영하듯 기존 체육회 가맹단체 회장들은 하나같이 "이제 그만 하겠다"고 사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체육회의 가맹단체 회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런 대로 할 만한 자리였다.
단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간 1천만~5천만원만 내면 회장님이란 괜찮은 감투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대다수가 경제인인 회장들에게는 시·도체육회장인 대구시장, 경북도지사와 독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이들 중 일부는 사업 수완을 발휘,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또 결속력이 높아 사람 동원이 쉬운 체육 분야의 특성상 많은 정치 지망생들이 앞다투어 회장 자리를 노렸다.
게다가 회장을 맡으면 해당 단체의 전무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이 집이나 회사의 대소사까지 앞장서서 처리해 주는 보이지 않는 메리트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IMF를 겪고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회장 명함을 새기려는 사람들이 급감했다.
시장, 도지사가 이들의 경제적인 희생에 대한 반대급부로 베풀 수 있는 특혜가 없어지면서 회장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대구의 역도·체조·펜싱·요트·카누·우슈, 경북의 럭비·조정은 회장이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회장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품격도 없어졌고 이들이 책임져야 하는 단체의 살림살이 규모도 크게 축소됐다.
회장 구인난에 단체들은 학식이 없고 졸부라도 좋다며 돈 있는 사람들에게 구애를 하고 있다.
수년째 회장이 공석으로 있는 일부 단체에서는 '500만원짜리 회장도 괜찮다'고 호소할 정도로 단체장의 위상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그러나 사정이 360도 다른 곳도 있다.
태권도협회 등 자생력이 있는 일부 투기 종목에서는 회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난리다.
대구태권도협회 경우 이달말 회장 선거를 앞두고 현재 구·군지부 회장 선거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한때 대구 태권도인들 사이에 제기됐던 경제인 회장 영입을 통한 협회 개혁은 물 건너갔고 집행부 임원들도 회장 자리에 눈이 멀었다.
대구의 농구, 검도, 야구 등 경기인 출신들이 회장을 맡은 종목에서는 회장의 자진 사퇴를 기대하고 있다.
이들 종목에서는 회장들이 충분한 돈을 내지 않고 자리만 지키고 있기 때문에 살림살이가 엉망이 된 상태다.
하지만 회장이 해당 종목의 운동을 한 선배이기에 임원들은 그만 두라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가맹단체 회장의 값이 떨어진 만큼 회장을 모시는 기준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가맹단체에서는 새 회장을 영입할 때 회장 자리가 돈을 내고 특혜를 누리는 곳이 아니라 오직 봉사하는 곳임을 분명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각 단체마다 제 몫을 하는 회장들이 취임해 지역 체육 발전에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김교성 스포츠생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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