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자식을 잘못 키운 탓"

광주지역 원로들의 수능부정(修能不正)사죄는 "결국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어른들에게 매질해 달라"는 소박한 의미로도 값진 것이다.

교육부장관만 짤막하게 죄송하다고 했을 뿐 정작 학생들을 가르치고 시험감독까지 했던 교사들이나 시'도교육감은 물론 국무총리조차 '소가 닭 쳐다 보는 듯'모른척 하는 마당이니 더욱 이 원로들의 사죄는 돋보였다.

'그 사죄의 뜻'을 좀 더 깊게 분석해 보면 이번 '수능부정'파동의 '근원'과 '해결책'이 그속에 함축돼 있기 때문에 이를 거론한 것이다.

◇ 들키지 말고 커닝 해서라도…

따지고 보면 이번에 수능을 치른 약 60만명중 부정시험에 가담한 학생들을 크게 잡아 1천명 정도라 할때 전체 인원 대비 0.2%에도 못미치는 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올해로 13년째인 수능시험 도입이래 이런 부정이 최소한 수년간 계속돼 왔다는 점이나 그들 때문에 억울하게 대학에 낙방한 사안까지 감안하면 그 폭발력이나 후유증이 엄청난 건 사실이다.

문제는 비단 부정시험을 치른 학생들이나 그에 동조한 그 부모들만 무조건 일방적으로 매도할 일인가 하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고3'은 가족전체가 겪는 대학으로 가는 고통의 관문이다. 게 중엔 들키지 않고 커닝을 해서라도 점수를 더 따 줬으면 하는 욕심은 오히려 부모들이 자식못지 않을 것이다. 대학은 자식이 최소한 '행세'하고 살게 하는 우리사회의 '커트 라인'이기에 수능은 부모와 함께 치르는 바로 '생존 전쟁'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집념의 소산이'부정을 해서라도…'를 부른 것이다. '정치부패'에서 비롯된 온갖 '부패 관행'도 그 속에 함축돼 있다.

이렇게 볼때 60만명 전체가 단지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뿐이지 '마음속의 부정욕심'은 '너'''나'를 초월하는게 솔직한 현실 아닐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우수학생이나 열등학생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성적만능주의가 낳은 패단이 다름아닌 인성(人性)의 상실이다. '고3의 자식'이 인격체가 되기보다는 '득점(得點) 컴퓨터'가 되기를 염원하는 부모나 명문대 합격 인원으로 유'무능 판별잣대가 되는 교사'학교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게 '수능부정'이다. 그 와중에 '바르게 건강하게'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다. 이런 연유로 자식이나 제자를 잘못가르쳤다는 자성(自性)의 뜻을 단지 광주의 원고들이 대변한 것이다. 또 수능부정의 해결책은 누누히 강조하는 얘기이지만 우리사회의 '인재선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데 있다. 이런 '성적기계'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사고력과 인성이 결여된 자식만으론 무한한 창의력이 나올수가 없다. 10~20년 후에 부닥칠 보다 치열한 세계 경쟁력에서 이겨낼 원동력이 그 어디에서도 나올 수 없다. 공직이나 교직의 철밥통시대는 곧 마감된다. 기업의 경쟁력 원리는 디지털시대가 본격화되면 어느 분야인들 예외없이 밀려든다.

판'검사'변호사'의사'약사'은행원 등 이른바 '부(富)와 명예'를 함께 가져다 준 각광의 직업군은 이미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부패관행'도 경쟁력 앞에선 버틸 재간이 없다. 40대의 인생 황금기에서 결정적이고 완벽한 경쟁력이 자신의 재능과 적성이 뒷받침안된 상황에선 발휘될 수가 없다. 퇴출의 고배를 들 수밖에 없다.

◇ 경쟁력 있는 인격체로 길러야

자원이 없는 한국의 미래는 탁월한 창의력을 바탕한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인재들만이 국가경쟁력을 지켜낼 건 누가 뭐라해도 자명한 명제이다. 그런데 왜 당장 불황탓에 조금 홀대한다고 해서 이공계는 외면하고 의'약계열에 우르르 몰리는가. "박봉이라도 의사를 꼭 해야겠다는 사람만 의대에 지원하라"는 어느 중견의사의 말은 현직에서 절감한 위기를 토로한 것이다.

이런 미래비젼과 적성'재능을 예리하게 관찰, 대학진로지도를 해야할 부모나 교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무조건 서울의 대학간판만 보고 막상 졸업은 했지만 실패한 '고득점생들'이 셋 중 한명꼴로 부모와 함께 속앓이를 지금도 앓고 있잖은가. 이런 판국에 '수능부정'으로 떡잎부터 노란 계층이 설사 대학에 간들 어떻게 견뎌낼 건가. 광주 원로들의 사죄는 바로 이런 교육을 못시킨 어른들이 속죄함으로써 그 해결책도 제시한 셈이다. 곧 닥칠 자녀나 제자의 대학진로지도에 앞서 우선 적성과 재능부터 다시금 살펴보고 제발 '학생눈높이'에서 대학과 학과를 먼시각으로 선택해야할 이유가 이런맥락에 닿는다. 이게 '수능부정'이 준 역설적 교훈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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