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식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서 듣기와 말하기, 읽기와 쓰기라는 언어의 네 가지 기능 모두가 높은 수준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단번에 모든 능력을 올리기는 힘들다. 일단 듣기와 말하기를 유기적이고 통합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때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엉뚱한 데 시간만 낭비하고 실제 의사소통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십상이다.
◇사례-5세와 10세의 차이
어느날 캐나다인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다섯 살 아이가 그 친구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가 무심코 아이에게 "What a cute boy! How are you?"라고 하자, 그 아이는 놀랍게도 거의 완벽하게 그의 말을 그대로 따라서 했다. 영어에 노출된 적이 없어도 어린 아이들의 언어 흡수력은 스펀지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와 달리,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한 친구는 "8개월째 영어학습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제대로 원어민의 발음을 듣고 따라하지 못 한다"며 "영어 발음을 한글로 적으면서 따라하는 방법은 어떨까"라고 물어왔다.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편평하고 단조로운 한국식 발음으로 화석화(Fossilization)되기가 쉽다고 대답해줬다. 그만큼 흡수력이 줄어든 것이다.
◇현실-들어도 말은 못한다
'영어 듣기가 되면 저절로 말문이 열린다'는 말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TOEIC이나 TOEFL 등에서 고득점을 받고 취업한 사람들이 업무상 외국인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경우에, 대다수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기업은 직원을 공개채용할 때, 영어구술시험을 필수과목으로 두고 있다. 실제로 언어의 네 가지 기능 중에서 말하기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5, 6개 혹은 그 이상의 단어로 된 긴 영어 문장을 들었을 때 중간의 단어들은 대부분 잊어버리고 처음이나 끝부분에 있는 두세 개 정도의 단어만 기억한다. 몇 번 반복해서 들으면 그 문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대로 따라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하기조차 힘들다면 긴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는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력의 문제다. 공부 방법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방법-덩어리로 익히자
지난 첫회에서 제시한 방법은 듣기와 말하기의 통합적인 학습법으로, 수준에 맞고 흥미 있는 교재를 선택해 강세와 리듬, 억양에 중점을 두고 반복 연습을 하는 소리내어 따라하기였다. 이어지는 단계는 덩어리 학습법이다.
i)문장을 단어들의 덩어리로 나눠 보자. 즉, 문장(Sentence)이란 단어(Word)가 아니라 구(Phrase)와 절(Clause) 같은 하나의 덩어리(Chunk)로 구성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원들이 돈을 셀 때, 한 장씩 세는 것보다 부채 모양으로 펴서 5장이나 10장 단위로 세는 것이 훨씬 빠른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Those shorts look comfortable for running in.'이라는 문장은 7개의 단어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구라는 덩어리의 단위로 보면 주어구 'Those shorts', 동사구 'look comfortable'과 전치사구 'for running in' 3개의 덩어리가 한 문장을 만든다. 이러한 덩어리들을 2개나 3개의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길이가 조금 긴 단어'라고 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those와 shorts라는 단어들도 존재하고 'those shorts'라는 단어도 있다고 본다.
ii)구나 절과 같은 의미 덩어리의 단위로 끊어서 듣고 말하고 읽어야 한다. 발음 측면에서 유창성(Fluency)이 있고 없고는 어떤 단어들 사이를 끊느냐, 연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다) 문장 강세나 구 강세의 수는 덩어리의 수를 결정한다. 따라서 문장에서 어떤 단어에 강세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듣기 말하기 훈련이 필요하다. 강세는 그 위치에 따라 단어의 의미를 변화시키거나 아예 의미를 없앨 만큼 중요하다.
가령 'Tell me again what your brother looks like.'는 어떻게 끊어서 읽을 수 있을까. 가장 자연스러운 끊어 읽기는 'Tell me again // what your brother / looks like.'로 볼 수 있다. 이때 명사절과 동사 앞에서 끊어 읽는다는 사실은 문법 학습이 아니라 녹음된 소리를 많이 듣고,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iii)원어민이 평상시 말하는 정상속도로 들으며 흉내 내듯이 그대로 따라서 말한다. 흔히 느린 속도로 듣고 말하기 훈련을 하다 보면 정상적인 속도의 대화를 듣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실제와 같은 속도로 학습하지 않으면 결코 정상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정상 속도에서만 구어(Spoken Language)의 특성인 연음(Linking), 동화(Assimilation), 이화(Dissimilation), 생략(Ellipsis)과 같은 여러 가지 음운현상을 보고 배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발음상의 규칙들이 무엇이며, 왜,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인가를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이러한 음운 현상이 있는 소리들을 그대로 모방하여 연습하는 것이 먼저다.
정원철(앤도버스쿨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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