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동반하는 기쁨

12월의 딱 중간에 서서, 더 넘길 것 없는 달력을 들여다보며 이맘때면 늘 해보는 '올해의 사건과 뉴스'들을 챙겨보게 된다.

가장 적절한 단어이기에 어쩌면 구태의연하게 들릴 수 있는 '다사다난' 이라는 말. 인류의 역사가 그러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것은 아닐까?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위로해보는 사건과 사고들이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관심사에 따라 분야별로 꼽을 수 있는 이런저런 큰일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다른 이들이 중요하다고 꼽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많은 이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논란이나 비정규직보호 입법안이나 경기침체 등등 '중요하고 거대한 담론으로 인정하는 분야'외의 문제에 대해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성매매방지법의 시행과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과 연예인 최진실씨 사건을 관통하는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사건들의 공통점은, 대상이 여성이라는 점과 항간에서 가십으로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는 '운명'을 가졌다는 것이다.

대상이 여성이라는 지적에 대해, 시각에 따라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인정하겠다.

최소한, 여성의 운명을 규정하는 전통적 방식이 있음과 그것이 갖는 불합리성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면.

성매매방지법은, 성을 사고파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하는 범죄행위이며 그것을 중간에서 매개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어른들의 잘못된 성 문화를 흉내 냈다고는 하지만 그 자체가 충격인 남학생들의 잔혹성과,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이중삼중으로 '죽임'을 당하는 전통적인 성폭력 범죄의 재현이다.

최씨 사건은, 이혼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부끄럼 없이 돈으로 환산한 기업의 불구적 상혼이 발단된 것이다.

성매매방지법이 집중 시행된 한 달 동안, 모든 지면과 모든 술자리와 모든 여성단체의 홈페이지를 떠올려 보자. 심지어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당한 파업과 쟁의를 하는 과정에조차 그들의 밥줄을 염려하지 않던 수많은 '우리'들이, 헤어날 수 없는 그물에 걸려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밥줄을 그토록 애달파 하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밀양사건은, 치안과 교육의 부재를 증명하듯 41명이나 되는 남학생들이 저지른 패륜적 행태도 충격이었을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할 종지기로서의 경찰들이 오히려 편파적이며, 피해자를 술자리 안주감으로 치부했다는 놀라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숨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씨에 대한 건설회사의 손해배상 소송사건은, 건물의 품질보다는 여배우의 인기로 경쟁하려 했다는 혐의를 씻지 못할 것이며, 소송내용이 명백히 함의하는 '이혼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놀라운 발상이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세 가지 사건이 경고하는 것은, 여성은 어떤 경우에라도 '몸이 망가져서는 안되며' '일부종사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 는 사실이다.

몸을 함부로 하고, 이혼을 가벼이 생각하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만, 상대방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실들에 대해 왜 세상은 유독 '여성'에게 그 책임을 묻는가, 개인적인 불행이 여지없이 전체 여성의 현실이 되고 있는 이 상황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 반쪽'인 남성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못 견디게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바란다.

정치도 경제도 모두 중요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진리를 깨우치고 자신의 습성을 바꿔가는 '진정을 아는 자'로 우리가 성숙해 가기를. 성(性)에 관한 불구적 판단을 되돌아보고, 동반하는 기쁨을 남녀가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그리하여 새해가 모두에게 기쁨이기를.

송애경 포항 남부재활후견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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