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지 재건축 붐으로 대구 전역이 들썩대고 있다.
옆 동네가 재건축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기 무섭게 '묻지마'식의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구성되는가 하면 개발이익으로 재미를 본 '꾼'들이 재건축 컨설팅사의 주민설명회에 몰려드는 등 가히 '재건축 광풍(狂風)'이 몰아치고 있다.
◇재건축 잘되면 '로또'
"집을 부숴 나대지로 만들면 재건축 유치도 쉽고 보상비도 더 많이 나오니까요."
지난 18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의 한 단독주택지. 지난해 중순부터 재건축 붐이 일어난 이 일대에는 고가 크레인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20~30년 된 빈 집과 집을 헐고 난 공터는 주차장이 돼버렸다. 상가 소유자 이모(54·수성구)씨는 "주거 3종 지역이다 보니 주택은 평당 300만~500만 원, 상가는 700만~800여만 원까지 2~3배 가량 올랐다"며 "자세한 평당 보상가액은 이웃끼리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찾은 남구 봉덕동의 한 재건축 조합사무실은 위임장을 낸 주민들의 명단과 사업구역 지도, 재건축 관련 홍보물이 도배되다시피 해 있었다. 조합관계자는 "100여 가구 규모로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데 미 동의자에 대한 매도청구권 행사가 가능해지면서 '알박기', '물밑작업'이 거의 사라졌다"며 "남구 지역에는 등록된 재건축 조합만 18곳"이라고 들뜬 반응을 전했다.
아파트 분양권을 가질 수 있거나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주택을 넘길 수 있는 재건축은 주택소유자들에게 '로또복권'이나 마찬가지다. 주민동의, 노후상태 등 재건축 기준이 미달되더라도 소유권을 통째로 사들여 '민영주택건설사업'으로 전환, 재건축이 강행되기도 한다. 이 경우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 구성, 조합설립 인가 등 거추장스런 절차 없이 업체가 집 주인과 1대 1 계약, 사업승인만 받으면 되며, 사업기간도 2~3년으로 일반 재건축(3~5년)에 비해 짧다.
지난 2월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조합설립을 준비 중인 북구 침산동 일대. 조모(55·북구 침산동)씨는 재건축 추진 중에 지정업체가 부도가 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주민동의가 85%에 이를 정도로 빠른 추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일대는 40~50년 된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세도 안 들어오는 곳이었다"며 "하루 빨리 시공사가 선정돼 보상가가 책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모(59·수성구)씨는 요즘 재건축 시행사와 몇 개월째 끈질긴 줄다리기 중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대 주택가에 재건축 붐이 일면서 주민 절반이 10%의 계약금을 받고 시행사 측에 소유권을 넘겨 준 것. 이씨는 "우리 집보다 못한 옆집이 평당 800만 원 받았다고 들었다"며 "사업시행이 늦어져도 1천만 원 이하로는 협상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10월 재건축 구역지정을 받은 서구 평리동 일대 ㄴ 컨설팅 관계자는 "중심상업지구의 경우 평당 800만 원, 1천만 원 이상 부르는 게 값"이라며 "집을 너무 싸게 넘겼다며 판 집을 도로 사들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재건축, '신 난개발' 우려
대구시 건축주택과에 따르면 현행 건교부 '단독주택지 재건축 업무처리' 규칙이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등 관련제도가 "주민들이 원할 경우 큰 제약이 없을 정도"로 폭넓은 재건축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재건축 열기 뒤에는 주민동의, 시행사 선정 등 재건축 과정상의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난개발'도 우려되고 있다. 매입방식으로 추진되는 재건축은 세입자 이주보상 등 보호장치도 없다.
컨설팅·건설업 관계자들은 "재건축 성공률이 10% 안팎에 불과한 상황에서 향후 2년 이내 재건축에 가시적인 진척이 없을 경우 이에 따른 여파가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성구 범어동 한 상가세입자 김모(34)씨는 "아파트 재건축으로 막심한 영업 손해를 본 데다 인테리어비용과 권리금까지 몽땅 날리게 됐다"며 "집주인으로부터 이사비용 한 푼 못 받고 내쫓길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양모(55·수성구)씨는 "재건축 정비구역에 포함된 집은 평당 500만~600만 원씩 받았다는데 골목 건너 우리 집은 200만 원 그대로"라며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 조망권 침해, 골목길 교통난 등 근심만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특히 재건축 추진을 쉽도록 만든 '매도청구소송'의 경우 미동의자의 재산권 침해 소지가 높아 관련 소송도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달 초 재건축 조합으로부터 매도청구소송을 당한 조모(65)씨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조합에서 끌어들인 컨설팅사가 재건축 실적도 없으면서 동시에 4곳에서 사업을 진행, 신뢰가 가지 않아 재건축 동의를 하지 않았을 뿐인데 난데없이 '80% 주민동의를 얻었으니 상가를 넘기라'는 소송이 제기된 것. 조씨는 "2년 전부터 재건축 움직임이 일었지만 조합장 얼굴도 한 번 못 봤다"며 "조합이 큰 몫을 잡을 수 있다며 선물공세와 감언이설로 주민들로부터 인감증명, 토지사용허가서를 받아갔다"며 화를 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 "오는 2006년 초까지 시의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기본계획'이 용역·수립되기까지는 단독주택 재건축 열기가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북대 건축공학과 이정호 교수는 "본래 재건축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현재 단독주택지 재건축 열기는 한 탕을 노린 투기위주로 변질되고 있다"며 "대구의 주택 소유율이 사실상 100%에 육박한 상황에서 사업성이 좋은 입지를 제외한다면 실제 재건축이 성사되는 곳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대구시 건축과 홍용규 담당은 "서울 중심의 '도시 및 주거환경법'은 대구 실정에는 맞지 않다"며 "기반시설이 낙후된 주택지는 재개발로 보호해야 하지만 막대한 택지개발비를 투입한 주택지를 단지 20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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