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위의 삶-(16.최종회)프놈펜

시엠립을 떠나 프놈펜으로 가는 새벽, 숙소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마중을 나왔다.

일주일 내내 서툰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던 운전기사 센은 자신이 듣던 캄보디아 전통 음악 테이프를 선물로 내밀고 일하러 간 애인이 태국에서 돌아오면 내년쯤 결혼할 예정이라는 쓰라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얼굴이다.

지난 밤 그동안 신세진 것이 고마워 작은 감사의 표시를 했던 것이 오히려 머쓱하다.

그들의 순박한 얼굴을 뒤로하고 픽업트럭은 어느새 호수의 둑 위로 난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

앙코르를 여행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캄보디아인의 비참한 삶을 보고 울었다는 그 길에는 여전히 가난이 묻어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 화폐의 단위가 톤레삽에서 잡히는 리엘(riel)이라는 물고기에서 따온 것이고 보면 톤레삽을 가난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아 보인다.

빈곤에도 종류가 있기 마련이다.

절대적 빈곤은 박탈감을 주지는 않는다.

모두 다 가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 빈곤은 반목과 질시를 낳기 마련이다.

톤레삽 호수의 강둑에 모여 사는 이들이 비참해 보이는 것은 시엡립에 넘쳐나고 있는 천박한 자본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작은 움막, 변변한 농토조차도 없지만 이 호수를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여행자의 울지 않은 변명일지 모른다.

픽업에서 내려 작은 보트를 타고 한참을 나가자 우기에 제주도의 8배 크기로 불어난다는 톤레삽의 바다 같은 수평선을 따라 고속보트가 서 있다.

배낭을 보트의 지붕 위에 올리고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mp3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붕 위에 눕는다.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의 노래 '백합처럼 하얀(White as Lilies)'이 매서운 바람처럼 날카롭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장 34절)라는 성경의 잘못된 해석은 카스트라토를 낳았다.

중세 교회의 성가대는 변성기 이전의 소년들을 거세해 여성의 음역을 노래하게 만들었고 이는 19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교황청에서 카스트라토가 금지된 이후 훈련을 통해 여성 음역을 정복하려는 남성 가수 '카운터 테너'가 등장하게 되었고 현대의 인기있는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얼굴은 카스트라토의 미소년에 가깝다.

이런저런 생각에 깜박 잠이 들었나 싶더니 프놈펜이다.

여장을 풀고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하다가 소위 킬링필드라 불리는'처웅 엑(Cheoung Ek)'으로 향한다.

폴포트 정권이 뚤슬렝(Toul Sleng) 수용소의 사람들을 고문한 후 처형한 곳이다.

1980년에 8천900여 구의 시신이 집단 매장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한적한 농가를 배경으로 달리던 버스가 멈춘 곳은 크메르 양식의 탑이 멀뚱한 들판이다.

입장료를 받는 입구 주변은 철조망이 을씨년스럽다.

위령탑은 유리창 안에 발굴된 유골들로 가득하다.

번호가 매겨진 여러 기의 집단 매장 터에는 각기 다른 이름들이 붙여져 있다.

총기 대신 날카로운 선인장을 이용해 처형을 한 장소며 아이들의 유골만이 발견된 장소는 이념의 잘못된 광기가 낳은 현장이다.

하지만 과연 이 주검들을 전시용으로 만들 자격이 훈센정부에게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킬링필드는 폴 포트만의 만행은 아니다.

단지 베트남과 이웃한 나라라고 해서 북한이 미국 정찰기를 격추시켰다는 이유로 해서 융단폭격을 가해, 미국이 학살한 캄보디아인들의 죽음은 감추어진 킬링필드이다.

미국이 가한 이 폭격의 이름이 스낵, 디너, 디저트였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미국의 죄는 용서할 수 없음이 분명하고 잊히거나 감추어져서는 안됨이 분명하다.

진정 훈센정부가 민족의 자긍심을 가지려면 폴 포트의 만행뿐만 아니라 미국의 폭격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캄보디아 국민들의 아픔을 위로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위령탑의 유골들은 전시될 것이 아니라 화장되어야 마땅하다.

매장 터에 수탉들이 붉은 벼슬을 곧추세우고 있다.

"아직까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어요." 가이드 처녀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난다.

불과 20여 년 전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득한 20여 년의 지난 일로 치부하려는 자들 사이에는 이렇듯 분명한 망각의 차이가 있다.

씁쓸한 해거름을 등에 두고 돌아온 프놈펜 시내는 은밀한 유혹으로 끈적거린다.

저녁을 해결하러 들어간 레스토랑은 낮은 조명에 귀를 찢을 듯한 음악이 부자연스럽다.

메뉴판을 받아들자 종업원은 피자를 권한다.

말로만 듣던 대마초로 만든 소위 해피피자다.

옆자리의 서양 여자들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서로에게 권하는 피자가 그녀들의 행복 지수를 얼마나 높여 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쉽게 먹을 것을 선택할 수 없을 때 늘 그렇듯이 커피 한잔에 바게트 빵 한 조각으로 식당을 나온다.

태국에서 만난 여행자가 일러준 숙소 앞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지만 '슈팅레인지(shooting range)'를 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딱히 해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확인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M16 소총에서 로켓포까지 온갖 무기를 쏘아볼 수 있는 슈팅레인지는 이미 한물간 사업이거나 아니면 호객을 하기에는 여행자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는지 모른다.

아침 내내 침대 위에서 여행일지를 정리하다가 뚤슬렝 박물관으로 향한다.

원래 고등학교였던 건물을 폴포트 정권이 정치범 수용소로 운영하면서 2만 여 명을 고문하고 처형한 곳이다.

프놈펜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뚤슬렝의 이웃은 주택가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자유를 속박당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그들을 갈라놓은 이념이란 것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다"라는 괴테의 경구는 지금도 옳다.

인간이 배제된 이념, 인간에 앞선 이념은 거짓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은 이념은 결국 옳지 않은 길을 가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운동을 하던 철봉이 목을 매단 현장이었다는 표지판은 처절하다 못해 그 잔인함에 부끄럽기까지 하다.

동료가, 혹은 가족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도록 만들어진 감옥의 구조는 인간의 미친 역사가 보여주는 추악한 증거다.

운동장 한 편에 하얀 꽃잎이 지고 있다.

넋이었을까?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는 슬픈 영혼들의….

'우리가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온 힘을 다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택한다면… …우리는 초라하고 제한된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수백만 명의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열일곱의 나이에 인류를 위한 일을 고민했던 칼 마르크스가 옳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옳다고 굳게 믿고 있다.

또한 청년 전태일이 갔던 그 길은 그 어떠한 이념보다도 옳은 것이고 아직도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친구들에게 여전히 큰 힘이라고 믿는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뚤슬렝 박물관 곳곳을 덮고 있는 가시철망은 젊은날의 열정을 지키지 못한 비겁한 여행자의 부끄러운 가슴을 찢는다

이제 그간의 여행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사실 여행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은 길에서 배우고 자란다는 것이다.

또한 그 길에는 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희망이지 못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은 젊은날의 의무임에 틀림없고 영원히 간직해야 할 화두임에 분명하다.

티베트에서 그리고 네팔,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말하고 가르쳐 준 것들을 제대로 옮기지 못한 것은 아닌지 마음에 거슬린다.

오랜 시간. 부족한 글을 인내로 읽어주신 매일신문의 독자 여러분께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격려를 해주신 사무실 H선배, L선배, 그리고 든든한 누이 L과 세종의 이모님, 아직도 여전히 바보(?) 같은 노동운동의 길을 걸으며 못난 후배의 삶에 용기를 주시는 이태광 선배와 형수님께 다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또다시 목이 마르도록 삶에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날의 떠남을 준비하며….

전태흥 자유기고가

사진 :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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