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송년의 노래

다시 한해가 저물고 있다.

그리고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똑같이 한 살씩 나이를 보태게 될 것이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다가 자고 나면 새로운 날을 맞는다.

삼백육십오일 큰 수레가 한바퀴 돌고 있다.

그 수레에 묻은 미움과 원한과 기쁨과 즐거움과 온갖 시름이 일곱 가지 무지개가 되어 하늘을 수 놓고 있다.

추사선생의 글중에 이런 한 구절이 있다.

"한나절 책을 읽고 한나절은 좌선을 한다.

" 그 뜻을 어떻게 삭이든 간에 생활에 쫓겨서 반성할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다.

하루의 수레바퀴를 내가 돌려야지 돌아가는 수레에 몸을 맡기고 한해를 보냈어야했든 세월이 섭섭하기 그지없다.

작은 일 큰 일 하늘에 구름처럼 생겨났다가 없어졌다가 하였다.

웬 쓸데없는 일이 그렇게도 많이 들락날락하는지 이것이 인생살이란 말인가. 한발 물러서야지 하고 늘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막상 문제에 부닥치면 나도 모르게 혹시 손해를 보지나 않을까 하고 긴장을 하게 된다.

한 발만 물러서면 편안할 것을 그 기회를 놓치고 아차 하는 사이에 폭풍 속으로 휘말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소득도 없으면서 항상 몸과 마음만 다치게 되는 것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이 있다.

땅에는 경계가 있지만 하늘에는 경계가 없는 것이다.

어릴 때 감나무 밑에서 내땅 네땅 갈라놓고 감꽃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든 시절이 생각이 난다.

감꽃의 달콤한 맛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놀이였다.

어른들의 내 것 네것 싸움은 놀이가 아니라 생사가 관계되는 일이고 실제 그로 해서 생겨나는 살인 행위가 비일비재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는 말만 있지 둘이 붙어서 깊은 수렁으로 떨어졌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하였다.

오늘날 우리네 살림살이는 어떠한가. 둘 중에 하나가 없어지든가, 둘 다 망가지든가 해야 끝나는 것이다.

물러서는 사람이 비겁자가 된다는 말이다.

높이 나는 새는 땅 싸움을 하지 않는다.

봉황새는 하늘을 날다가 아무리 날개가 아파도 벽오동 나무 아니면 앉지를 않고, 배가 고파 창자가 마른다해도 대나무열매를 만나지 못하면 먹지를 않는다고 했다.

이 모든 얘기들이 옛 어른들의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해묵은 때를 털어 내야 할 시간이다.

미운 마음 섭섭한 일들에서 해방되어야 할 시간이다.

엔간한 욕심쯤은 손해보는 셈치고 깨끗이 놓아야 할 때이다.

원수진 일 아직도 남아있으면 용감하게 물러 설 것이다.

자유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 또 있을까.

오래 전의 일이었다.

인도를 여행하는 중에 간디가 살던 집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가 기거하던 방을 그대로 공개하고 있었다.

납작한 판때기 침대와 안경과 신발과 그밖에 따로 있는 게 없었다.

그야말로 깨끗하였다.

그가 생시에 병으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죄가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내가 만일 병으로 죽는다면 지붕 위에 올라가서 간디가 병들어 죽었다!'라고 소리쳐라"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의 예언대로 그는 동족의 총탄으로 살해 되었다.

그는 거대한 장작더미 위에서 불태워 사라졌다.

그곳이 지금은 성스러운 곳이 되어 매일 같이 찾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나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간디는 정말 가진 것이 없었다.

그는 권세도 없었으니 잃을 것도 잃은 것도 없었다.

나는 가진 것이 마음에 넘쳐 빈 구석이 없어서 답답하다.

되지도 않은 그림을 잔뜩 쌓아 놓고서 그것이 부끄러워 오늘도 나는 얼굴을 붉히고 있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오는 새해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은 아주 멀리 뒤로 물러서고 싶다.

한 살 새롭게 먹는 만큼 한치만큼만 나의 삶이 성숙해지기를 바라서이다.

높이 날고 멀리 보고 깨끗하게 그리고 조금만 더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하루만 이래도 아니 몇 시간만 이래도 가끔가끔 물러서는 연습을 하고싶다.최종태 조각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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