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시러버가 서울말로 우째 쓰노? 고마 치아뿌고 여기 말로 캐바라."
주변 사람들에게 표준어로 말을 건넨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열에 아홉은 이런 식으로 대꾸하지 않을까. 일상생활에서 표준어는 찬밥 신세다. 대다수의 토박이들에게 표준어는 '깍쟁이'들이나 쓰는 '닭살'돋는 말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투리 교정은 연기자나 아나운서, 리포터, 기자 등 방송계 지망생들에게는 필수 코스다. 강호동이나 김제동처럼 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MC들이 있긴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투리를 고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마치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듯,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으'와 '어', '여'와 '에' 등의 모음이 잘 구분되지 않고 된소리가 강하며 표준어와 달리 어간을 강하게 발음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특성상 다른 방언보다 교정하기가 훨씬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9일 오후 찾아간 대구의 한 연기전문학원. 1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무대에서 연기 연습에 한창이다. 장문의 대사가 이어지지만 귀에 익숙한 사투리는 들어보기 힘들다. 아이들은 사투리가 갖고 있는 억양과 발음, 발성을 최대한 자제하며 축약과 이중모음, 장단음 구별 등 기초 화술법을 익히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 이들이 사투리를 고치는 데는 빠르면 3~6개월, 심할 경우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조승암(39) 한국방송연극영화예술원 대구본부장은 "연기 지망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사투리 교정을 위해 학원을 찾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말을 더듬거나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들이 화술을 배우거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연기 학원을 찾는다는 것.
표준어를 배우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아닌 표준어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강한 거부감이다. 뮤지컬배우가 꿈이라는 강해랑(19)군은 "학교에서 표준어를 쓰다간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기 일쑤"라고 했고 최유리(18)양은 "표준어를 쓰면 주변에서 '닭살돋는다', '예쁜 척 하지 마라'는 말들을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안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현업에 종사하는 방송인들은 어떨까. 로컬 방송국의 경우 지역 출신의 아나운서나 리포터, MC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대부분 뉴스나 드라마 등 여러 매체 속 표준어를 따라하며 사투리를 고쳤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리포터로 활동중인 고유진씨는 "드라마 속 대사나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라디오, 뉴스 등을 접하려고 노력했다"며 "거리의 간판을 계속 읽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서 들어보거나 성악가로부터 발성을 배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용'과 '일상용' 말투가 달라 자신도 모르는 새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고씨는 "'이렇게 해가지고', "커피 태워 드릴까요" 처럼 표준어 억양에 사투리 말투가 섞여 나와 당황했다"고 했다. 표준어는 '이렇게 해서'와 '커피 타 드릴까요'다. 대구MBC 서혜진 MC는 "'분답다', '섞다'와 '썪는다', '목에 힘이 빡 들어간다' 등 거센 발음이나 사투리 말투가 방송 중에 튀어나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권민정 TBC 프리랜서 MC는 "사투리 교정은 거의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다름없다"며 "아무래도 남자들보다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사투리 교정을 잘 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동훈 대구MBC 아나운서는 "표준어는 친근감은 떨어질 지 모르지만 부드럽고 예의 바르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며 "표준어를 쓴다는 이유로 놀림받는 경우도 점차 줄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사진 : 주변 사람들의 강한 거부감 때문에 표준어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표준어를 배우는 한국방송연극영화학원의 수강생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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