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 노트)산불 막는다고 참나무 마구 '싹둑'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바위 틈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던 참나무를 벴다고요?"

지난달 '훼손되는 앞산'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산 정상에서 고산골로 내려오던 길이었다. 산 중턱에 마치 사열식(査閱式)을 하듯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잣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 숲의 끝에는 8m 폭으로 능선까지 나무를 마구 베어낸 자리가 있었다.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화선'. 얼마 전 산불이 난 자리에 새로 잣나무숲을 만들고 그 옆의 참나무를 모조리 베어냈다며 등산객들은 혀를 찼다. 지역의 한 전문가에게 이를 물어봤다.

"완전 거꾸로 된 산림정책이죠. 정말 한심합니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조목조목 설명했다. ▽불꽃이 1km 이상 날아다니는 한국 산불의 특성상 몇 미터 폭의 방화선은 제구실을 못하고 ▽참나무가 잣나무보다 몇 배나 불에 강하고 ▽기온이 높고 건조한 대구 기후에서 강원도나 개마고원에 사는 잣나무는 질병에 약하고 ▽잣나무 아래에는 다른 식물이 살 수 없어 종다양성을 훼손한다.

"말 그대로 '진짜 나무'라서 참나무죠. 도토리 열매로 '묵'을 만들어 먹고 멧돼지 같은 산짐승에게는 좋은 사료도 됩니다."

대구시에 잣나무숲을 조성한 이유를 물었다. 담당자는 "얼마 전 인사 이동이 있어 잘 모르겠다. 오래된 일이라 자료를 찾아봐야겠다"고 했다.

잣나무는 건축 자재, 가구 재료로 잘 팔리는 '돈되는' 나무이고 참나무는 별 쓸모없는 '진짜' 나무일 뿐이다. 왜 잣나무림을 조성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경산에 있는 한 대학 교수를 찾아갔을 때다. 그는 2시간가량 앞산 생태계에 대해 설명한 뒤 "앞산을 살리는 길이라면 뭐든지 할 테니 연락만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앞산을 아끼고 걱정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앞산은 대구시민 4만∼5만 명이 매일 앞마당같이 드나드는 곳이다. 시민들은 자연 그대로의 공원이 되길 바란다. 작은 산림계획이라도 먼 미래를 고려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큰 돈 들이지 않아도 된다. 성의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기관장 망신주기' 논란과 관련해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응원하며 이 대통령의 언행을 비판했다. ...
정부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에서 강변여과수와 복류수를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통해 대구 시민의 식수 문제 해결을 조속히 추진할 것을 당...
샤이니의 키가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을 받고 있는 '주사이모'에게 진료를 받았다고 인정하며 현재 출연 중인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고 SM...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