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밀의 방' 삼성 라이온즈 라커룸·더그아웃 탐방

라커룸(Locker Room). 말 그대로 잠긴 방이다. 일반인은 물론 프로야구 취재기자들조차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비밀의 공간이다. 5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현대유니콘스와의 프로야구 경기 이후 삼성라이온즈의 라커룸에 처음으로 들어가봤다. 더그아웃은 출입통제가 더 심한 편. 삼성라이온즈 관계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정을 엿볼 수밖에 없었다.

◆조용한 라커룸

경기가 끝나면 감독, 코칭 스텝은 주전 선수들과 이날 경기를 간단히 분석한다. 승패에 관계없이 고생했단 얘기를 하고 나면 각자 라커룸으로 들어가 자신의 장비, 유니폼 등을 챙긴다.

이날 라커룸은 조용했다.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를 모두 쓸어담아 이날 패배는 다소 씁쓸했던 터.

이날 등판하지 못한 특급 마무리 투수 오승환 선수는 자신의 옷을 정리하면서 '홈에서 세이프만 선언됐으면 세이브 하나 더 올렸을텐데…"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양준혁 선수는 큰 걸음으로 다소 불만인 듯한 인상을 쓰며 자신의 관물대로 향한다. 부상으로 빠진 심정수 선수 대신 4번 타자로 나선 조영훈 선수 역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듯 자책하며 가방을 정리했다.

라커룸은 군대 관물대 형식으로 선수 각자가 1개씩 쓰며 유니폼, 야구 장비 등을 챙겨두는 소중한 공간이다. 빨래할 옷은 세탁하는 곳에 갖다두고 새로 주문해야 할 야구용품 등은 게시판에 기재한다. 샤워기 11개가 달린 간이 샤워장도 있다.

하리칼라, 브라운 등 외국인 선수 2명은 제일 먼저 옷을 벗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여성이 없기 때문에 속옷만 입고 다녀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 라커룸.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두 선수는 영어로 그날 경기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 받더니 크게 웃었다.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권오택 운영팀장은 "TV나 신문 등 언론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은 경기에 열중하는 모습이지만 라커룸에선 선수들의 생활태도 및 습관을 여실히 알 수 있는 곳"이라며 "이런 보이지 않는 곳의 분위기가 때론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라커룸을 나서면 감독실과 코치실. 선동렬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 언론을 상대로 이날 경기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라커룸을 포함해 모두 100평 남짓한 이곳 앞쪽은 야구장 안에 반지하식으로 마련된 선수, 감독의 대기소인 더그아웃(dugout).

◆희비교차 더그아웃

5일 현대 유니코스와의 홈경기. 초긴장 상태에서 9회까지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더그아웃에서 수다를 떨거나 심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선동열 감독은 둥근 패션 선글라스를 낀 채 경기 내내 간단한 작전 지시만 투수, 타격코치에게 할 뿐 무표정이다. 하지만 아쉬운 장면이나 실수가 연발할 때 선글라스를 벗고 고개를 돌린다. '오늘 얘들 왜 이래?'정도의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한대화, 류중일 코치는 수비땐 더그아웃, 공격땐 1, 3루 베이스 뒤로 가서 '체인지업 낙차가 크니 잘 보고 쳐라', '직구가 빠르다. 배트를 일찍 돌려라." 등 상대투수의 볼에 대한 대비책을 일러줄 뿐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는다. 안타를 치고 나가면 엉덩이를 한번 쳐주는 것도 이들의 몫.

경기도중 흥미로운 상황이 펼쳐지면 선수들은 분주해진다. 각자 특유의 습관이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도 이 순간이다.

이날 3번 타자로 나온 양준혁 선수는 덕아웃에 들어오자 투덜댄다. 6회말 친 타구가 2루수 실책으로 기록된 것이 내심 불만인 듯. "또 타율 좀 내려가겠네" 옆 선수가 농담삼아 한마디 던지기도 한다. 8회말 1번 타자 박한이 선수는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의 호수비로 잡히자 자신의 모자, 배트 등을 놓으면서 "어떻게 저 공을 잡냐?"며 상대 수비수가 원망스러운 듯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재걸 선수는 6회말 1사 2루에서 삼진을 당하자 마치 죄인이 된 양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와 "잘 안 맞네!", "왜 이렇지" 등 독백을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9회말 8대7 원아웃 1, 2루 상황에서 진갑용 선수가 안타를 쳤지만 홈으로 파고 들던 대주자 이정식 선수가 아웃되자 선수들은 일제히 덕아웃 밖으로 뛰어나와 동시에 아쉬운 표정을 연출했다.

이날 삼성은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케네디 스코어로 졌고 선수들은 조용히 각자 짐을 쌌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