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항구도시 뉴올리언스를 덮쳐 시 전체에 치명타를 입혔다. 미시시피강 하구에 위치한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본고장이자 낭만의 도시이며, 흑인의 노예역사와 가난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애환의 도시이다.
나는 약 이십년 전 뉴올리언스대학교의 유학생으로, 그리고 나중에 이 대학의 객원교수로 모두 3년 남짓 뉴올리언스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이 대학은 역사가 그리 깊지 않은 학교지만, 대학원 재학시절 재정이 넉넉하지 못했던 나에게 장학금을 제공해 주었으며,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대학 기숙사 근처 폰차트레인호수는 우리 가족의 산책 장소였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가지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는 뉴올리언스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18세기 초 프랑스인들이 처음 뉴올리언스를 식민지 정착촌으로 개척했다. 이 지역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과 유럽인과의 해상교역 요충지였다. 1762년 프랑스가 스페인과의 '7년 전쟁'에서 패배하자 스페인이 뉴올리언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1800년대 초 나폴레옹이 이 땅을 되찾은 후 프랑스는 이를 신생독립국 미국에 팔았다. 그 후 뉴올리언스는 면화 생산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번창했다. 아프리카 흑인이 가지고 있던 전통음악의 영향과 미국 흑인의 독특한 음악적 감각이 혼합되어 이 곳에서 재즈가 탄생하였다.
시내 중심가에는 재즈의 대가 루이 암스트롱의 동상이 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유럽풍 건물들의 자태를 잘 드러내고 있는 '프렌치 쿼터'가 전 세계의 관광객을 부르곤 했다. 2004년에만 해도 1천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뉴올리언스시의 70% 정도가 해수면보다 낮다. 그런데 시 정부가 도시 확장을 위해 주위에 있던 늪지대를 대량으로 개발하여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막아주던 완충장치를 많이 없애버렸다. 카트리나의 강타로 바닷물의 범람을 막고 시를 보호해 주던 제방이 터져버렸다. 시의 약 80%가 물에 잠겨 수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막대한 재산상 손실을 입었다. 자연재해인 동시에 인재였다고 할 수 있다.
요즘에도 가끔씩 매스컴을 통해 뉴올리언스 소식을 접하곤 한다. 지금도 허리케인이 할퀴고 간 상처 때문에 시 전체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뉴올리언스가 다시 추억과 낭만 그리고 애환이 깃든 유서 깊은 도시로 거듭나길 바란다.
성장환(대구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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