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매일신문사가 주최하고 대구보훈청이 주관하는'2006 매일보훈대상'시상식이 15일 오후 4시 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상이군경· 유족·미망인·장한 아내·특별 무공수훈 부문 등 5개 부문에 걸쳐 대구·경북 지역에서 각 5명씩 모두 10명이 수상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나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선열들의 행적이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는 이때, 수상자들의 삶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군경 부문 이윤경(74·동구 신암2동) 씨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홀로 된 이 씨. 초교 졸업 후 직조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뒤늦게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6·25전쟁 발발로 그해 7월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 수도사단 26연대 3대대에 배속됐다. 경북 영일군 기계 전투에서 머리에 파편을 맞는 중상을 입었으나 응급치료 후 안강 전투에 뛰어들어 양손에 부상을 당해 1951년 8월 명예 제대했다. 휴전 이후 이 씨는 호구책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상이군경들을 모아 상이군인 감찰대를 조직, 사회복귀를 도왔고 1991년 상이군경 회원들을 위한 '상군시보(현재 상이군경 신문)'를 창간, 운영중이다.
◆족 부문 배영석(57·수성구 만촌3동) 씨
6·25전쟁에 참전했다 아버지가 전사하는 바람에 배 씨는 날품을 파는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고교 졸업 후엔 보훈청의 도움으로 원호원 직업훈련소에서 기술을 익힌 뒤 1964년 4월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했다. 한국전력 모범회원 표창을 수 차례 수상하는 등 직장생활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배 씨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아버지의 뜻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 시간을 내 6·25 전몰군경유자녀회 수성구지회장으로 활동해왔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민원업무를 대신해 주고, 형편이 어려운 회원에게는 성금을 지원하는 등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애써왔다.
◆망인 부문 이봉선(81·달성군 화원읍 천내2동) 씨
19살에 중매로 만난 남편 김연구 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두 아이와 이 씨를 남겨둔 채 참전, 이듬해 전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소식에 슬퍼 할 겨를도 없었다. 시부모와 시누이 4명,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날품팔이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그는 20여 년간 이불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돌봤고 효자로 소문난 두 아들은 농부, 고교 체육 교사로 자랐다. 생활고에 찌들려 남을 돌아볼 겨를 없던 이 씨는 아들들이 장성한 뒤 다른 미망인들을 찾아 위로하면서 아픔을 덜어줬다. 이 같은 선행을 인정받아 지난 2004년 대한민국 전몰군경미망인회 회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한 아내 부문 나태숙(50·수성구 범물동)
나 씨는 1980년 월남에 파병됐다 부상을 입고 귀국, 실의에 빠져 있던 전상군경 5급 김원균 씨를 만나 결혼했다. 나 씨는 화장품 회사에 다니며 가족을 돌봤고 보훈병원 구내식당을 운영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실패한 뒤 척추종양암으로 고생하는 남편과 중풍을 앓는 시부모, 두 딸을 위해 억척스레 살면서도 불우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다. 매년 연말 달서구 상인동 불우 노인들을 위문하는 한편 식당을 찾은 상이군경회원들에게는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틈틈이 보훈단체 경로회원을 찾아 다녔다. 이처럼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그의 모습에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다.
◆별 무공수훈 부문 김형용(76·중구 인교동) 씨
1930년 2월 경북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에서 태어난 김 씨는 협성 상업고교를 졸업한 뒤 6·25전쟁이 일어나자 주저 없이 사병으로 입대, 이듬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경북 다부동 전투, 평양 강동지구 전투, 강원 금화지구 전투 등 전선을 누비며 전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56년 군 전역 후 국력 회복을 위해선 인재양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 초교 교사로 45년여 동안 재직하면서 제자 3천여 명을 길러냈다. 또 백발이 성성한 나이임에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자연보호운동, 거리질서 계도, 청소년 선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위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군경 부문 이태년(77·영천시 문외동) 씨
빈농에서 태어나 13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초교 과정을 마친 이 씨는 6·25전쟁 당시 수원지구 전투에서 배에 부상을 입었고 결국 1952년 9월 육군 하사로 명예 제대했다. 제대 후 불구의 몸(전상군경 3급)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연탄배달, 폐지수거 일을 하다 농협에 취업,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슬하 2남 2녀가 장성한 뒤에는 국가로부터 받은 유공자라는 명예를 사회에 돌려주자 마음먹고 영천시 보훈단체 자원봉사단장, 영천시 상이군경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홀몸 노인들을 돌보고 복지시설을 찾아다녔다. 이 같은 활동으로 국가보훈처장 표창, 경북도지사 표창, 영천시장 표창 등을 받았다.
◆족 부문 김희택(60·의성군 의성읍) 씨
김 씨는 7살 되던 1953년, 6·25전쟁에 참전한 아버지가 전사하고 이듬해 어머니까지 세상을 뜨자 졸지에 전쟁고아가 돼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한시도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아버지의 뜻을 잊지 않았다. 전몰군경 유족들을 돕는 일을 생각하다 10여 년 전부터 현충일 의성 충혼탑에 참배하러 가는 유족과 상이군경 회원들에게 교통편을 무료로 제공해 왔다. 지난 2002년 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의성군지회장에 임명돼 의성군과 국가보훈처에 건의, 의성 충혼탑이 재건립될 수 있게 했다. 그동안 의성군수, 경북경찰청장, 경북도지사, 국방부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망인 부문 권영애(76·김천시 평화동) 씨
1947년 17살의 어린 나이에 남편 정수영 씨와 결혼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 씨가 6·25전쟁이 터지자 참전, 1953년 4월 전사하고 만 것. 권 씨는 김천보훈지청에 근무하면서 홀몸으로 자녀를 키워야 했다. 성실한 업무처리로 직장에서 환영받던 그는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일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김천시 여성단체 회원으로 명절 때마다 장애인 복지시설 방문 등 지역 사회봉사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또 지난 2001년부터 대한전몰군경 미망인회 김천시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지회회관 임대기금을 조성, 매년 미망인 15~18명을 선정해 지원해왔다.
◆한 아내 부문 박명숙(48·경주시 황오동) 씨
월남전에 참전했다 두 눈을 잃은 뒤 실의에 빠져 있던 이병대(전상군경 1급) 씨에게 박 씨는 한줄기 빛이 되어 줬다. 이 씨의 순수함에 감동, 부모와 친척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을 올린 것. 이 씨가 만성신부전증으로 고통을 받을 때도 박 씨는 늘 남편 곁을 지켰다.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 박 씨는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매달 음식을 노인들에게 대접하고 도시락을 만들어 아동복지시설에 가져다주는 등 봉사활동을 펼쳐'천사 아줌마'로 불리고 있는 것. 또 장남 시영 씨는 구미경찰서에서 경장으로 근무하며 2대째 나라 사랑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별 무공수훈 부문 김성도(66·울릉군 울릉읍) 씨
월남전 전공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울릉도 토박이 김 씨. 전역 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해양생태계 보존을 위해 수중 환경정화활동을 매월 펼쳐왔다. 김 씨는 특히 '독도 주민 1호', '독도지킴이'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야욕으로부터 독도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틈틈이 채취한 해산물을 독도경비대에 전하고 지난 1991년 11월 독도로 주소를 이전했다. 또 지난 2월 독도로 완전히 이주하고 매일신문 사이버 독도지국장을 맡아 독도 홍보에 열을 올리는 등 독도 사랑에 몸을 던졌다. 그동안 경북지방청장 감사장, 울릉군수 표창, 해양수산부장관 표창, 국방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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