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김용락
아침 출근길 아파트단지 담장에
호박넝쿨이 맹렬한 기세로 앞을 향해 내닫고 있다
고양이 수염 같은 새순도 기세등등하다
처서 백로 다 지난 지 언제인데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한때는 저 호박넝쿨에 대고도
무릎 꿇고 살지 않겠다는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을 노래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시골 토담 위에서 아침 이슬 맞으며
가늠할 수 없는 허공과 미래를 향해
자신의 내면을 밀어 올려
자식새끼 둥둥 달고 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읽는다
큰 놈 작은 놈 잘 생긴 놈 조금 못난 놈을
이젠 늙어버린 줄기에 두루 달고
도심 아파트 담장 위에서 전진하는 모성(母性)
그 뜨거운 풍요를 바라본다
싸늘한 땅, '아파트 단지 담장'에서도 호박넝쿨은 '맹렬한 기세로 앞을 향해 내닫'는다. 그 흔한 호박넝쿨 앞에서도 '무릎 꿇고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던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관조의 나이, 중년을 지나 바라보는 호박넝쿨은 '자식새끼 둥둥 달고 가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렇다. 아무도 가꾸지 않아도 '가늠할 수 없는 허공과 미래를 향해/ 자신의 내면을 밀어 올'리는 호박넝쿨에서 관조의 눈은 모성(母性)을 보는 것이다.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선언적 삶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성(母性)적 삶이 아니겠는가.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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