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찬석·혜진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있기를…'

크리스마스가 또 다가오네요. 이제 네 살, 세 살인 찬석이와 혜진(여)이에게 크리스마스는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1년에 몇 번 안 되는 기회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애들을 데리고 공원에 산책이라도 나가려고요. 선물도 준비해야겠지요.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네요. 제대로 걷지 못해 방 안에서도 늘 보정기를 신어야 하는 아이들의 발 치수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참 못난 엄마지요. 그림책을 보며 '엄마', '아빠' 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상상해 봅니다.

찬석이와 혜진이는 둘 다 '미토콘드리아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만드는 세포 속 소립체에 이상이 생겨 뇌와 근육이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는 몹쓸 병. 발달장애, 뇌병변, 근육이상 증세로 자기 손과 발을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병. 그게 유전이라더군요.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 작은 것 하나 제대로 쥘 수 없는 그 무력함을 부모를 잘못 만난 제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두 돌이 될 때까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찬석이가 이상했습니다. 아이는 언제 숨을 거둘지도 모른 채 걷지도,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며 평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치료방법이 없는 이 희귀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네요.

2년 전, 우리 부부는 찬석이의 치료를 위해 예천에서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예천에는 병원이 없었고 대구에선 병원을 전전하며 떠돌았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갑자기 한 살배기였던 혜진이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지요. 오빠와 똑같은 증상이었는데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지요. 섬뜩했고 두려웠습니다. 혜진이마저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감정을 추스렸지만 불행은 비켜가지 않았고 같은 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찬석이 때문에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했던 내 이쁜 딸, 왜 우리 아이들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건가요.

아이 둘은 모두 뇌병변 장애 1급이 됐습니다. 우리는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됐고 평생을 약물로 치료하며 아이들을 고통 속에 내버려둬야 합니다. 많이 갖지 못했어도 우린 행복했습니다. 남편은 공사장 노동일을 했지만 저희를 끔찍하게 아꼈고 저도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게 간호사를 그만뒀지요. 큰 욕심없이 건강하게만 살자고 그러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삶의 전부가 송두리째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고통으로 변해가겠죠.

운동화를 신고 잔디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닐 아이들을 상상해 봅니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빛이 어른거립니다. 그날만큼은 아이에게 온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간곡히 기도합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길….

19일 오후 5시 대구 남구 대명동의 친정집에서 만난 구은지(27·여) 씨는 걷지 못하는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 주며 온종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즘엔 언어치료, 집중력치료로 하루를 보냅니다. 떨리는 손과 눈동자를 진정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는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 없는 살림을 쪼개어 재활에 열심이었다. "아이들이 지금처럼만 지내줬으면 좋겠다."는 그는 "병이 더 진행되면 아이들이 움직일 수도 먹을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엄마'라고 부르지 못해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달라는 그녀는 아이들의 초점없는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