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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조의 수다수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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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인된 거짓말 세 가지가 있다. 처녀가 시집안간다는 말, 장사치가 밑지고 판다는 말, 그리고 나이든 어르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푸념. 아무도 이 말을 곧이 믿지는 않는다. 다만 그냥 듣고 있을 따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하지 않는다. 사실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냥 주고받는 가식의 말들. 속고 속이는 세상이라기보다는, 알고도 속아주고 모르고도 속아주는 세상이라는 말이 맞겠다.

어릴때는 거짓말이란 '사람들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터득한 사실 하나는 '때로는 거짓말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상대를 상처주지 않기 위해 하는 거짓말들. 세상에 진실만 존재하고 거짓이 없다면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오늘도 난 거짓말을 한다.

"난 거짓말 안하는 사람이야. 살면서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 바로 이런 말이다. 의도성이 있든 없든, 사소하든 크든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한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가장 믿을 수 없는 말일 수 밖에.

사실 한 기자는 거짓말쟁이다. 입에 발린 소리도 잘하고,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둘러대는 것도 아주 능청스럽다. 그럼 이런 한 기자는 '나쁜 여자'일까?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용인해주는 분위기다. 오죽하면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을까. 하얀 거짓말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윤활유가 돼 주기도 한다. 살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남의 뒤통수를 치는 '새빨간 거짓말' 뿐!

#하루에 세번 거짓말 한다고?

EBS 특집 '거짓말의 진실'에서 성인남녀 10명에게 10일 동안 거짓말 일기를 써 달라고 부탁한 결과 하루 평균 3번의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개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길이 막혔다거나, 받기 싫은 전화에 회의중이라고 둘러대는 정도였다고.

과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할까? 모 중견업체에서 영업직 대리로 있는 김해식(34·가명)씨의 하루를 살펴보자.

김 씨는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미리 눙을 쳐 둔다. "저녁에 약속이 있을 것 같아." 아내는 누구와 술을 마시냐고 따지듯 물어왔지만 친구들과 편안한 술자리 한번 가지려고 이리저리 업무 관계자들의 이름을 갖다붙이는 것도 이젠 지친다. "업무상 일이야, 몰라도 돼. 늦지 않을테니까 먼저 자고 있든가."라고 대충 둘러대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벌써 성서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지만 아직 달구벌 대로 한복판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 미안한 마음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가식적인 인사 한번 날려준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유~ 다들 일찍 나오셨네요. 부장님은 좋은 일이 있으신가? 오늘 얼굴이 유난히 말끔해 보이십니다." 소위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전략이다.

영업직인 탓에 유난히 걸려오는 전화가 많은 해식씨. 그는 전화통화의 마지막에는 꼭 이런 말을 덧붙인다. "연락 드릴께요. 언제 술이나 한잔 하시죠." 오늘도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셀 수 조차 없다. 아, 물론 입에 발린 거짓말이다. 과연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 이 말을 믿고 '술 한 잔 언제 사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낭패다.

영업직의 매력 중 하나는 사무실에 틀어밖혀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약간의 '땡땡이'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계명대학교 주차장에 잠시 차를 대 놓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시간, 반갑지 않은 전화가 걸려온다. 얼마 전 은행으로 회사를 옮긴 친구다. '분명히 실적 핑계로 신용카드 한장 만들어달라고 하겠지?' "어~. 오랜만이다. 회사는 다닐만 하냐? 근데 내가 클라이언트랑 미팅 중인데 나중에 전화할께. 미안해." 뜨끔하긴 하지만 신용카드 만들어달라는 부탁 다 들어주다간 신용불량자 신세되기 십상이다. 살기위한 방편이니 어쩔 수 없다.

시간은 벌써 밤 11시. 가시 돋힌 아내의 전화가 걸려올 때가 됐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을 즈음, 아니나 다를까 벨소리가 울려댄다. "어, 2차 가자고 하도 졸라대서 어쩔 수 없이 모시고 왔는데 나도 이짓하기 정말 지친다. 30분 내로 빠져 나갈거야. 출발하면서 전화줄께." 과장된 목소리로 먼저 하소연을 하니 아내도 별 말 없이 전화를 끊는다. '속았지롱!' 그리고는 신나게 다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거짓말이 입에 붙었다고? 그러면 어때, 다 둥글둥글 살아가자고 하는 말인데….

#처세의 비타민, 거짓말

거짓말은 크게 네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하거나 가까운 사람을 돕기 위한 하얀 거짓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거짓말, 남의 이목을 끌기 위한 거짓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거짓말.

이 중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거짓말은 방어적 거짓말과 인간관계를 위한 하얀 거짓말일 것이다. 남을 속이고 더 큰 이익을 챙기기 위한 악의의 거짓말보다는 일상의 '작고 가벼운' 거짓말들이다.

그럼 이런 거짓말의 가장 큰 희생자는 누굴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직장 상사'를 단연 1순위로 꼽는다. 일을 재촉하는 상사에게 "다 돼 갑니다, 문제 없습니다.", 일이 부득이하게 늦어졌을 때는 "집에 일이 있어서, 몸이 아파서", 무슨 일을 시키든 "예, 알겠습니다." 이런 말 한번 쯤 하지 않고 직장생활 했다면 그건 정말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만 거짓말에 능한 것은 아니다. 주부 이윤경(47)씨는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30만원 주고 산 옷을 10만원이라고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구두쇠인 남편과 살다보니 돈 한푼 마음대로 쓰는 것도 쉽지 않다."며 "특히 아이들에게는 좀 형편이 어려워도 좋은 것만 해주고 싶지만 남편 성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게 산 것'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얼마전 결혼한 강수희(29)씨가 흔히 하는 거짓말은 "어머님, 저희 친정엄마 보다 음식솜씨가 너무 좋으세요."다. 맞벌이로 바쁜 아들 부부에게 이것저것 싸다주는 재미에 한창 신이 난 시어머니. 그런 성의가 고마워 늘 '너무 맛있어요'를 연발하다보니 강 씨의 집에는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꽤 많지만 어쩔수 없다.

#알고도 속는다

그렇다고 세상에 '완전범죄'란 없는 법. 게다가 누구나 그럴법한 상황에 대충 늘어놓는 빤히 보이는 거짓말은 누구나 알아채게 마련이다.

한 설문조시에서 다른 사람의 거짓말을 얼마나 잘 알수 있냐는 질문에 63%의 사람들이 '알 수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결국은 다들 알면서도 서로 속이고 속아주는 것이다.

이렇게 가벼운 거짓말이 만연하는 것은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불편하고 파괴적인 진실보다는 거짓말이 더 세상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만들수 있다. 어느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나타난 직장 동료의 모습이 아무리 어색해보여도 "너 가발썼냐? 머리 꼴이 아주 우스꽝스럽네."라고 말하는 것보다 "새로운 모습이네. 멋져."라고 한마디 해 주는 것이 서로가 행복한 지름길인 법이다.(이건 한 기자의 뼈아픈 실화다.)

이에 대해 '화이트 라이로 상대방 마음부터 열어라'는 책을 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이정숙 씨는 "하얀 거짓말이 사회적 성공과 직결되는 이유는 인간의 두뇌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며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그 말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성공하기 쉽다."고 했다.

거짓말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거짓말은 일종의 상황에 대처하는 '융통성'이 되기도 한다. 정도를 넘지 않는 거짓말은 오히려 화술로 인정받고 신뢰를 쌓아가는 기름길인 것이다. 제발, 내게 거짓말을 해줘! "사랑해.", "너 너무 멋져.", "행복해보이는구나."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하는 거짓말 Best 5

5위 : 저도 어머님 같은 시어머니 될래요.

4위 : 전화드렸는데 안계시더라고요.

3위 : 어머니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2위 : 용돈 적게 드려 죄송해요.

1위 : 어머님 벌써 가시게요? 며칠 더 있다 가세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거짓말 Best 5

5위 : 좀 더 자라. 아침은 내가 할 테니.

4위 : 내가 며느리 땐 그보다 더한 것도 했다.

3위 : 내가 얼른 죽어야지!

2위 : 생일상은 뭘…. 그냥 대충 먹자꾸나.

1위 : 아가야, 난 널 딸처럼 생각한단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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