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편하게…'
대도시 인근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해제하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 정부의 100만 가구 국민임대주택사업이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국민임대주택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환경파괴, 왜곡된 도시 개발, 지자체 반발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본사 기획탐사팀은 도심 생태하천인 대구 동화천 훼손의 문제점을 지적한 '연경지구 개발, 이대로 좋은가(본지 2, 3일자 1·3면 보도)'를 계기로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건설사업의 허실을 짚어봤다.
◆그린벨트에 아파트를 짓는 이유는?
건교부와 주공은 "건설 비용과 접근성 측면에서 땅값이 싼 그린벨트 지역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손쉽게 사업추진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숨어있다. 오랜 규제로 인해 인근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 땅을 공시지가로 매입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민원이 적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정부는 지난 2003년 국민임대주택 100만 가구 건설 정책을 내놓으면서 DJ정부 시절인 지난 2000년 해제가 가능하다고 고시된 대도시 인근의 그린벨트 조정가능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전국의 그린벨트 1천700만 평에 국민임대주택 14만 7천여 가구를 짓고 있거나 지을 예정이다.
주공 관계자는 "평당 수백만 원이 넘는 도심에 임대아파트를 지을 경우 정부·입주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임대주택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했다.
대구는 국민임대아파트 건설 계획으로 해제된 그린벨트가 모두 235만 평. 율하2택지지구는 2003년, 달성군 옥포지구는 2005년, 연경지구는 지난해 말 각각 해제됐으며 신서지구는 이달 중 해제될 예정이다. 주공은 북구 도남지구, 달서구 대곡2지구에 대해 건교부에 지구 지정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대구시는 이런 추세라면 다른 그린벨트 조정가능지역 15곳(2백75만 평)도 국민임대주택단지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용역을 발주하는 등 개발에 나서고 있다.
◆불거지는 부작용
정부는 2002년 임대주택사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단체장 허가 없이 임대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했다. 지자체의 거부나 반발 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놓은 것.
대구시 등이 생태하천인 동화천의 훼손 등을 우려해 건교부에 여러 차례 의견제시를 했으나 거의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목표 가구를 채우기 위해 사업을 서둘다 보니 자연생태계가 양호한 지역까지 대상지역에 포함시키고 주민, 지자체와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도시계획 공무원의 말처럼 건교부와 주공은 지역 실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짓기 편한 곳을 택해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그린벨트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경우 자연환경 훼손은 물론 도시 전체의 경관 파괴 및 난개발 우려가 적지않다.
주공은 도남지구와 대곡2지구의 개발계획을 짜면서 수질오염 총량관리제(지자체별 목표 수질을 관리·규제하는 제도)에 따른 오염물질 배출부하량 기준을 각각 86kg/일, 157kg/일로 예상했다. 현재 도남지구와 대곡2지구의 배출부하량이 각각 6kg/일, 17kg/일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린벨트 훼손이 수질오염에 큰 영향을 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가 2011년에서 2015년까지 개발사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오염물질 배출부하량이 하루 509kg에 불과해 주공 측에 오염물질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요구했으나 뚜렷한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그린벨트에 아파트단지가 계속 들어설 경우 대구시는 수질오염 총량관리제로 인해 자체 개발사업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해당 지자체의 반발도 거세다. 북구와 달서구는 도남지구, 대곡2지구에 첨단산업단지, 웰빙단지 개발 계획을 세워놓았다가 정부에 빼앗기게 됐다며 공공연하게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더욱이 임대아파트 개발로 소득세 등 세입은 거의 없는 반면 복지 지출이 크게 늘어나 지자체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됐다며 울상이다.
손경수 달서구 도시계획 팀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대주택을 짓고나면 입주자 일자리와 기반시설 및 편의 제공은 해당 지자체의 몫이 되는 만큼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함께 나와야 하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2012년까지 100만 가구를 짓겠다.'는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건설계획이 곳곳에서 삐걱대고 있다. 택지 확보가 어렵고 재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해당 지자체의 반발도 걸림돌이다.
◆획일적인 목표량에서 벗어나야
100만 가구 건설은 얼마나 타당성이 있을까? 사업시행자인 주택공사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재원 및 택지 확보문제 등을 볼때 국민임대주택의 획일적 목표량은 다시 설정돼야 한다. 건설 완료기간도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할 필요가 있다." 주공이 지난해 국민임대주택 건설사업과 관련, 전면적인 계획 수정이 필요하다는 정책 건의서를 건교부에 제출했다.
주공 관계자는 "정부가 그린벨트 지역까지 국민임대주택 부지로 활용토록 하고 있으나 목표 물량을 채우기에 어림도 없다"며 "택지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자체와 정책 협의도 잘 안돼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정부의 강한 의지와는 달리 사업 진행은 더디기만 하다. 정부 계획에 따라 2012년까지 대구에 들어서게 될 국민임대아파트는 8만4천700가구. 그러나 지난해 말까지 사업승인을 받은 가구 수는 1만9천894가구에 그치고 있다. 목표물량의 23%수준이다.
착공 실적은 더 형편없다. 8천835가구(44%)가 이제 첫 삽을 떴다. 북구 도남택지지구와 대곡2택지지구는 당초보다 5개월 이상 지체되면서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연경택지지구 경우에도 환경개선의 암초에 걸려 비슷한 시기에 예정지구가 고시된 달성군 옥포 보다 사업진행이 1년 정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더욱이 보상절차까지 남겨두고 있어 주민들이 반발할 경우 시일은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민임대아파트 건설에 쏟아붓는 정부의 재정지원 단가가 현실에 맞지 않아 재원 부족에 따른 착공 지연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땅값 상승과 건설기준 강화 등으로 비용이 매년 늘어나고 있어 주공 부채가 지난해말 현재 3조원에서 2011년에는 51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정부가 현실을 외면한 채 획일적인 목표치만 집착하고 있다는 얘기다.
◇노후주택 활용하자
현재 임대주택사업은 필요한 지역에 필요한 만큼 짓는 것이 아니라 짓기 편한 지역에 손쉽게 공급하는 땜질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때문에 "무조건 집을 짓기 보다는 낡은 주택을 매입해 개량한 뒤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이 연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구에서 2005년부터 시작된 다가구를 매입한 임대주택은 현재 693가구다. 주공과 대구도시개발공사는 올해 350가구를 매입해 임대할 계획이지만 매입 단가가 낮아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건교부가 정한 가구당 매입 비용은 최대 7천만 원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집값 싼 서구, 남구 등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가구 매입 임대주택은 직장과 생활 근거지와의 접근성이 좋고 임대료, 보증금이 싸 서민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조득환 대구경북연구원(도시계획)연구원은 "미래의 도시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서민을 도심 외곽으로 내모는 임대주택 정책은 기반시설 확충 등 막대한 비용과 갖가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며 "도심 노후 주택 등을 활용하면 공동화되는 기형적 구조를 깰 수 있고 택지 부족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질이 중요하다.
정부가 국민임대주택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사후 관리' 방안은 전무한 실정이다. 주공 관계자는 "관리는 전적으로 사업시행자의 몫이 되고 있다."며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관리가 소홀할 경우 멀지않아 '불량' 임대아파트 단지가 속출할 수도 있다. 대구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임대주택 경우 '내집'이란 생각이 없다보니 청결이나 노후화 같은 사후 관리가 문제"라며 "정부의 지원마저 없다보니 주거환경 개선이 쉽지 않다."고 했다.
도개공은 지난해 10년을 넘긴 영구임대아파트의 보수비용으로 72억 원을 사용했고 올해에도 상인, 지산 등 임대아파트의 배관, 난방시설 교체비용으로 200억 원을 지출해야할 입장이지만 주거환경 개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정부의 임대주택 입주자에 대한 임대료를 지원 등 주거복지시스템을 활용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필구 YMCA전국연맹 시민사업부장은 "저소득층의 임대료 보조 등 임대주택의 지자체 이양이 필요하다."며 "지역 공동체 구성 등 주거복지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영 임대사업을 민간에게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가 토지를 매입하고, 이를 민간업자에게 임대하면 건축비를 줄일 수 있고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낮출 수 있다. 최병두 대구대 사회교육학부 교수는 "정부가 국민임대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면서 입주자의 안정된 주거공간 확보 보다는 주택가격 안정의 방편으로 삼고 있는 것이 가장큰 문제"라며 "관리주체의 다변화 등 입주민의 사회적 질을 높이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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