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소인배 세상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준비하면서 빠뜨릴 수 없었던 일 가운데 하나가 동조자들의 포섭이었다. 당연히 당대 최고의 충신이던 포은 정몽주에게도 그 회유의 손길이 미쳤다. 혈기왕성한 청년 이방원의 초대에 나가게 된 56세의 재상 정몽주에게 어머니 영천 이씨는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시조 한 수를 건넸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올세라/ 청강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중국 고사에 나오는 '청강'까지 인용하면서 불행을 막아 보고자 한 어머니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몽주는 왕권찬탈이라는 야욕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까마귀와 백로의 등장이다. 군신의 도리와 충절을 지키는 대인군자를 백로로 표현하고,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변명과 속임수로 일관하는 소인들을 까마귀에다 비유하고 있다. 어쩌면 다소 무리한 흑백논리이며 이분법적 분별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대인과 소인을 지칭하는 이 같은 표현은 이후로도 조선조 내내 즐겨 사용되었다.

그만큼 대인과 소인배에 대한 경계심과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가 대인이고 누가 소인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학문에 깊이가 있고 덕성이 뛰어나며 행실과 인품이 뛰어난 사람을 대인 혹은 군자라 하고, 상대적으로 학식과 덕성 및 인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소인이라 한다. 하지만 이처럼 부족하다는 의미 외에도 도량이 좁고 간사하여 해를 끼치는 무리들을 낮추어 소인배라 부른다.

예로부터 유교에서는 흔히 소인배로 규정 짓는 4가지 기본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지녀도 얼굴을 맞대지 말아야 할 상대로 각별히 경계했다. 첫째가 간(姦)으로 마음이 간사한 사람, 둘째는 흉(凶)으로 마음이 흉악한 사람, 셋째가 계(計)로 아주 계산적인 사람, 넷째가 독(毒)으로 아주 독한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 소인은 언제나 자신을 위해 일을 하고 대인은 항상 남을 위해 일을 한다. 대인은 남을 먼저 챙기고 소인은 자신을 먼저 챙긴다. 소인은 남의 흠을 잘 파헤치고 대인은 자신의 흠을 잘 찾아낸다. 소인은 보복하려 하고, 대인은 용서하려 한다. 소인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법을 잘 알고, 대인은 상대를 일으켜 세우는 법을 잘 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소인배들로 만원이다. 까마귀도 백로도 뛰어난 화장술과 위장술로 식별조차 쉽지가 않다. 각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자칫 속은 뒤에도 속은 줄도 모른다.

민병도(화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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