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마재'를 다녀왔지요. 700㎞를 넘게 운전하여 '질마재'를 다녀왔지요. 길게 이어진 줄포만의 갯벌, 갯벌 너머 높게 솟아있는 변산반도, 그리고 바지락을 싣고 나오는 경운기 소리, 그리고 정겨운 사람들. '질마재'는 차라리 추억이었지요. '질마재'란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였지요. 하얀 얼굴에 노란 손가락을 지니고 계셨던 국어 선생님께서 미당의 시를 설명하셨지요. 아마 '꽃밭의 독백 - 사소단장'이란 시였던 것 같아요.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서정주, '사소단장' 전문)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하는 표현을 무척 좋아했었지요. 나에게 삶이란 닫힌 문이었고 난 그 앞에 서 있는 형국이었으니까요. 그때 선생님께서는 미당의 시 세계를 몇 개로 나누시고 '질마재 신화 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지요. '질마재'란 이름은 그때부터 내 머리에 새겨졌지요. 이상스럽게도 정감이 가는 명칭이었지요. 그러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질마재'라는 이름이 미당의 고향 마을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그렇듯이 어쩌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난 미당의 시가 좋았어요. 그건 아마 '질마재'라는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친일로 인해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어도 '죄인의 민족', '해방은 도둑처럼 왔다.'는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미당을 합리화했지요.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좋아했던 시는 '질마재'와 관련이 없는 '자화상', '문둥이', '귀촉도', '동천' 등이었지요. 특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는 '자화상'의 시구를 좋아했지요. '질마재'를 만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지요. 지난 겨울, 미당의 고향을 방문했을 때조차도 '질마재'는 내게 멀었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만나야 할 사람, 아니 만나야 할 대상은 반드시 만나게 되더라구요. 6개월 만에 다시 자가용을 몰고 찾아간 미당의 고향, 쉽게 찾긴 어려웠지요. 왜냐하면 부안을 거쳐 고창으로 들어간 여정은 겨울과는 반대 방향이었으니까요. 제법 오래 차를 몰았지만 미당의 고향이 나오지 않아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우연히 물어봤지요. '질마재가 아직 먼가요?' 왜 미당생가나 미당문학관을 묻지 않고 '질마재'를 물었을까요? 난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오랫동안 '질마재'를 품고 있었던 게지요. 무거운 삽을 어깨에 지고 가시던 할아버지 왈, '여기서 멀지 않아요. 저 구비만 돌면 질마재이지요.' 그렇구나. '질마재'는 추상적인 명칭이 아니라 아직도 실재하고 있는 구체적인 곳이구나. 잠깐 놀라웠지요. 그러면서 도착한 미당시문학관 앞, 다시 '질마재'를 물었지요. '질마재' 마을은 다섯 곳으로 갈려 있어, 소요산 상봉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는 서당물, 서당물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오다가 대여섯 그루의 수백 년씩 된 느티나무 사는 데를 지나면 웃돔, 그 밑에 아랫돔, 웃돔과 아랫돔 사이의 조그마한 개울을 건너 북쪽으로 가면 송현, 그리고 거기서 동으로 얼마쯤이나 논둑길을 새에 두고 있는 신흥리. 그렇게 이루어져 있지요. 미당의 삶은 바로 '질마재'와 결부된 것이지요. '질마재'는 미당의 슬픔이기도 했고 자부심이기도 했지요. 부친이 마름이었고 아마도 일본에 우호적이어서인지는 모르지만(결국 미당도 그러한 길을 걷게 되지만) 미당의 시에는 외가에 대한 묘사가 많아요. 미당의 눈에 '아비는 종'이었던 게지요. 당연히 그러한 혈연적 관계보다는 자신은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했지요. 친가를 부정하고 외가를 찾는 거기에 미당의 슬픔, 외할머니의 슬픔, 아니 질마재의 슬픔이 있었지요.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1975년 간행된 서정주의 대표적인 시집이다. 이 시집은 서정주의 고향으로 회귀하고 싶은 정신적 토대 위에서 창작된 것이다. 시집 제목의 '질마재'는 시인의 출생지인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있는 마을 선운리의 속칭이다. 토속적이고 주술적이기까지 한 세계를 대담한 속어, 비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였고 시에 담긴 신화적 내용들은 시인의 고향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한국인의 원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민족의식의 뿌리와 한국인의 원형을 발견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의의가 있다. 시집에 실린 시는 대체로 산문 형식의 유장한 리듬을 지니고 있으며 이야기 형식으로 평범하지만 나름대로의 형상으로 살아갔던 민중들의 삶을 질박하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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