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화언 대구은행장 '만보걷기' 동행취재

"정상을 향해 일상의 정성을 다합니다"

오전 4시 40분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이날 오전 5시부터 집 주변에서 1만 보를 걸었다. 말이 1만 보지, 그리 걷기가 쉬운 일인가? 올해 우리나이로 64세(1944년생). 하지만 그는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새벽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늦으면 자정무렵에 집에 들어가지만, 아무리 귀가가 늦어도 거르는 법이 없습니다. 생활의 활력을 아침 운동에서부터 찾습니다."

오는 30일 영남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는 이화언 대구은행장. 은행장에다, 박사님, 이제 조금 천천히 살아도 되겠건만 그는 여전히 바빴다. 회의, 행사, VIP 만남 등 하루 10여 개의 일정을 소화한다는 이 행장.

분주한 그와 조금이라도 오래 얘기하기 위해 25일, 이 행장의 1만 보 걷기 아침 운동을 따라붙었다. 하지만 운동 시간에서조차 그는 바쁜 표정이었다.

"오늘도 오전에만 회의 2건 등 10개가 넘는 일정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운동은 해야죠. 오늘 운동도 1시간 정도 할 겁니다."

요즘 무슨 생각을 가장 골똘히 하느냐고 물었더니 "직원들 생각"이라고 했다. 직원들에게 어떻게 잘 대해 줄까를 가장 많이 고민한다는 것.

"직원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요, 은행 영업의 출발점입니다. 제가 직원들에게 잘해줘서 그들이 만족하면 고객들도 밝고 활기찬 대구은행 직원들의 모습을 발견하고요, 또 이렇게 되면 고객들이 대구은행에 앞다퉈 찾아옵니다. 이런 결과로 영업이 잘되면 우리 주주들도 큰 이익을 얻게 되지요."

그는 행장 취임 이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고 했다. '이래라 저래라'라는 명령식 지시보다는 '대구은행 선배' 이화언의 고백과 '인생 선배' 이화언의 경험을 그대로 옮긴 진솔한 편지였다. 'CEO편지'는 최근까지 110차례 나갔다.

"처음엔 몰랐는데 진솔한 얘기를 쓰니까 직원들이 '클릭'을 많이 하더군요. 저는 지난 37년간 대구은행 생활에서의 실수도 직원들에게 과감히 고백합니다. 창구영업 직원 시절, 주판을 잘못 튕겨 고객에게 이자를 더 물린 일 등을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결국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저와 직원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줍니다."

그는 '작은 일, 사소한 일이라도 충성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했다.

"저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나름대로 큰 꿈을 갖고 은행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5년간을 작은 점포(대구 교동시장 지점)에 창구대출담당 붙박이를 시켜놓고 옮겨주지를 않는 겁니다. 기획업무도 해보고 싶고, 외환도 취급해보고팠는데 신입행원 시절 정말 속으로 불이 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만 5년간의 영업점 생활을 통해 저는 남들이 하지 못한 '기초'를 튼튼히 다졌고, 결국 그 시절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일에 미쳤던' 이 행장. 그는 '1등 은행원'이었지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가족에게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저는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저희 점포에 은행감독원의 감사가 나왔는데 도저히 신혼여행 갈 엄두가 안나더군요. 결국 아내에게 못가겠다고 했죠. 정말 그때는 아내에게 미안하더군요."

그는 대구은행을 '색다른 은행'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제 장사만 잘하는 은행으로는 안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지속가능경영'이라는 개념을 은행영업에 도입했고, 장사도 잘하지만 윤리적으로 깨끗한 은행, 지역 밀착형 은행, 환경에 이바지하는 은행을 만드는 작업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해에만 95억 원의 자금을 지역에 환원했습니다. 저희가 올린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4%에 해당하는 거액입니다. 이러한 규모는 은행권 최상위입니다. 대구은행은 전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착한' 기업이 될 것입니다. 대구은행은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최근 금융기관 최초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고 공인된 국제기구로부터 A등급을 받았습니다."

걷는 도중 그는 주변을 살피며 "참 아름답지 않느냐."고 했다. 대구가 아름답고 훌륭한 도시라는 것.

"비관적 의견도 적지 않지만 우리 대구경북의 미래는 대단히 밝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대구경북이 하나라는 의식을 갖고 협조적 관계를 갖춘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것입니다. 산업 측면에서도 최근 기계금속 산업 등이 맹렬한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대구의 경우,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했고, 자기부상열차 유치를 목전에 두고 있죠. 이렇게 희망있는 도시가 있습니까? 우리 지역민들이 이제 기대를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구·경북의 미래가 밝은 만큼 대구은행도 '세계적 지역은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은행은 올해 마흔 살이 됩니다. 이제 100년 은행으로 갑니다. 그래서 올해 '솔개 프로젝트'라는 것을 도입했습니다. 솔개는 일흔 살까지 사는데 마흔 살이 되면 자신의 오래된 깃털을 뽑는 등 6개월 동안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 환골탈태의 과정을 겪는다는 우화가 있습니다. 우리 대구은행도 다소 아플지 모르지만 이제 묵은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출발합니다. 대구경북지역에 '세계적 지방은행'이 있다는 것은 우리 지역민들에게 대단한 자랑입니다. 아직 저희가 많이 모자라지만 대구·경북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은행을 만들어볼 겁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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