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이정의 독서일기] 학벌사회

낮은 학력은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죄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그러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학력을 부풀리거나 조작하기도 한다. 고착화된 학력차별이 수많은 거짓과 모순과 불행을 양산한다. '초졸'학력을 '고졸'이라고 속였다가 구속된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학위를 조작하여 '출세'한 이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한다.

많이 배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높은 학력과 학벌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기회는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배움의 길은 다양하고 배움의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사람의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다. 학벌이나 학력(學歷)이 반드시 학력(學力)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학력(學歷)이나 학벌의 차이를 능력의 차이로 확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의 차이가 인간적 차별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억울하다. 부당함과 억울함을 대량생산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학교 졸업장이 없거나 학벌이 안 좋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평생 열등감이라는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교육현실은 '충분히' 비정상적이며 이 땅의 고질병임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는 누구나 하기 힘든 모양이다. 자신에게 닥친 현실은 피해가면 그만이다. 해서 사교육시장과 해외유학만 나날이 문전성시다. 강력하고 지배적인 학벌집단에 진입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교육현장은 전인교육도 전문교육도 아닌 뛰어난 시험 선수를 길러내기 위해서 전력을 다한다.

능력이 뛰어나도 학력과 학벌이 뛰어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사회. 이것이 문제의 본질 같다. 이 책은 심각한 사회 병리현상인 학벌체제의 모순과 폐해를 과감하게 지적하고 그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대안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학벌타파를 위해 먼저 모든 입사원서에 학력란을 없애고, 학벌집단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학부를 폐지하고, 공직자 지역 할당제를 제안한다. 대학을 평준화하고 대학간의 자유로운 이동도 가능케 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교육현장의 구조와 가치를 평준화해야 한다는 것이지 개인의 능력과 개성을 평준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학벌의식이라는 커질 대로 커진 '종기'를 제거하기 위해 무작정 개개인의 의식변화만을 기다릴 수 없는 일. 외과적 수술을 해야 할 병이 있듯, 저자는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현실적 제도를 먼저 바꾸어야만 한다고 한다. 타당한 말이다. 학벌은 한번 결정되면 변치 않는 '현대판 신분제'다. 학벌경쟁에는 패자부활전도 없다. 정말이지 우리는 전근대적이고 이상한 계급사회에 살고 있다.

저자는 '사유하지 않은 욕망은 굴레'라고 했다. 사유는 실종되고 욕망과 경쟁만 남은 교육은 '우리'를 붕괴시킨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그 우리가 아니다. 끼리끼리 뭉쳐 있는 폐쇄회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우리'다. 누구든 홀로는 살 수 없다. '홀로'가 모여 '사회'가 되는 게 아니라 '사회'속에서만 온전한 '홀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나와 너는 '우리'속에서만 나와 너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닫힌 우리'가 아니라 '열린 우리'에게서 나와야 한다. '평등한 우리'의 상호인정 속에서만 나와 너는 진정한 차이와 다양성을 꽃 피울 수 있다.

금이정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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