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난 하나론 만족 못해" 새로운 신드롬 멀티라이프

"뭐든 2개 있어야 OK"

화장품가게 사장 예병환 씨. 그는 강의가 없을 때만 가게에 나온다. 화장품을 들고있는 그의 모습에서 경제학교수 같은 풍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강단에 선 그는 또다른 모습이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화장품가게 사장 예병환 씨. 그는 강의가 없을 때만 가게에 나온다. 화장품을 들고있는 그의 모습에서 경제학교수 같은 풍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강단에 선 그는 또다른 모습이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스쿠비두 공예에 열중인 경북쿨텍 박진석 사장.
▲ 스쿠비두 공예에 열중인 경북쿨텍 박진석 사장.

"난 이중생활을 즐긴다. 낮엔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은행원이지만 밤엔 바텐더다. 아무도 나의 이중생활을 모른다."

가상세계에 빠지는 '매트릭스형' 인간이나 인터넷에 구축된 가상현실 '세컨드라이프'가 아니다. 두가지 일을 갖고 이중생활을 즐기는 '멀티라이프' 신드롬이 일고있다. 이들은 경제적인 부를 추구하기 위한 투잡스(two jobs)족들과는 다른 삶을 추구한다. 직업도, 취미도, 외국어도, 심지어 자동차에 휴대전화까지도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한 가지만 잘해서는 앞서나갈 수 없는 세상이다.

▶투잡스가 아닌 두개의 삶

예병환(48) 씨는 대구시 달서구 죽전네거리 인근에서 화장품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인터넷에 화장품도소매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대학교수다. 대구대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는 외래교수(시간강사)다. 이 대학의 외래교수 노조분회장까지 맡고있다. 독일의 반데르크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따고 귀국한 직후인 1996년부터 11년째 대학강단에 서고 있다. 화장품가게는 사실 수입이 꽤 괜찮다. 2001년 온라인쇼핑몰을 열었다가 규모가 커지자 오프라인 매장까지 개설했다. 그는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는 계속해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싶다."면서 대학교수와 화장품가게 사장이라는 두가지 일을 겸업할 작정이다.

이유종 교수(계명문화대 뷰티과)는 자신의 전공을 살린 예림사진관을 운영한다. 그러나 대학교수직과 대형사진관 운영을 함께 잘하기란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컨드카 혹은 또다른 나

요일별로 자동차를 바꿔타는 사람도 있다. 평일에는 점잖은 국산자동차를 타다가 주말이면 스포츠카로 도로를 질주하는 스피드광도 있다. 자동차부속골목에서 일하는 임성식(25) 씨는 "튜닝을 하러오는 분들 중에는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들의 튜닝카는 대부분 세컨드카"라고 말했다. 자동차 외에 오토바이를 구입,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상철(34) 씨는 자신과 부인이 각각 승용차를 갖고 있지만 최근 스쿠터형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시내에서는 가끔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구입했다."고 했다.

▶2대의 휴대전화를 가져라

휴대전화를 2개 이상 갖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업무용과 개인용으로 구분하기 위해서다. 대구시장 비서실장 장세준(48) 씨는 두 대의 휴대전화를 갖고 다닌다. 대구시 등 공공기관에서는 간부급들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를 지급하고 있다. 청와대의 1, 2급 비서관들의 경우, 대통령직통휴대전화 등 3대의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장 씨는 "사적인 용무는 개인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있다."면서도 "급할 때는 개인휴대전화로 업무를 보는 경우도 잦다."고 말했다. 동성로 휴대전화골목에서 만난 김진석(27) 씨는 "제2의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말했다.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 등 둘만을 위한 특별한 휴대전화가 유행이라는 설명이다.

▶제2외국어는 기본

대구시내 중국어학원에 다니는 수강생들은 중국어전공자보다 제2외국어로 배우는 직장인들이 더 많다. 북방중국어학원의 박규열 원장은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은 영어는 기본적으로 잘하면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면서 "요즘 2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 국제통상팀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제2외국어 개념은 없다. 영어 외에 다른 외국어도 기본이기 때문이다. 김혜란(33) 씨는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으로 하고 모스크바에 연수까지 다녀왔다. 김은영(40) 씨는 영어와 불어에 자신있다. 틈틈이 제2외국어로 배운 불어실력이 팀내 최고로 꼽힌다. 평소 국제통상팀에서 불어를 사용할 업무가 별로 없다는 게 아쉽다.

2개 이상의 취미마니아도 도처에 있다. 부동산컨설팅을 하고 있는 여상철(44) 씨는 등산마니아지만 풍수에도 일가견이 있다. 산에 오를 때마타 틈틈이 풍수공부를 한 게 10여년이 지나면서 주변사람들의 사무실터잡기 등은 도맡고 있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는 갑자기 찾아오는 가상현실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세계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경북쿨텍 사장 박진석씨의 이색 멀티라이프

냉동기제조업체인 경북쿨텍을 운영하고 있는 박진석(39) 씨는 스쿠비두(scoubidou)공예협회장을 맡고있다.

냉동기와 냉매제조업체 사장과 스쿠비두 매듭 공예가. 조화가 잘 되지않는 직업이다. 그러나 그는 두가지 일 모두 자신의 본업이라고 말했다. 경북쿨텍의 지난 해 매출액은 20여억원. 종업원은 4명이다. 부친이 하던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미국유학을 다녀온 그로서는 제조업 한가지만 하기는 심심했던 모양이다. 인터넷으로 무역아이템을 찾다가 2005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쿠비두 공예가 눈에 들어왔다. 스쿠비두 공예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일종의 매듭공예다.

그는 스쿠비두 공예의 시장성을 확인하고 네덜란드로 직접 날아가 스쿠비두 공예를 직접 배웠고 재료와 공예법을 수입했다.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공예법을 보급시키고 있는 그는 현재 국내에서는 스쿠비두 공예의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지난 해 10월 스쿠비두공예협회를 만들어 공예사범을 배출하고 전국에 10여곳의 가맹점을 만들어 국내보급에 힘을 쏟고있다.

"사실 스쿠비두에 애착이 더 큽니다. 앞으로 시장성도 밝고…."

그에게 스쿠비두 공예는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인 셈이다.

서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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