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도 시립미술관 시대] (하)이런 미술관으로

"소장품으로 말하겠다"

▲ 지난 9일 기공식이 열린 대구시립미술관 건립 사업은
▲ 지난 9일 기공식이 열린 대구시립미술관 건립 사업은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기 위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찾아가는 미술관.' 오는 2010년 준공할 대구시립미술관에 대한 미술인들의 기대를 한마디로 단정할 수 있는 말이다. 운영 방향을 비롯한 세부적인 사항은 궁극적으로 대구시민은 물론 대구를 찾는 국내외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러보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를 위한 실천 방안도 다양하다.

◆좋은 작품은 곧 좋은 기획

김혜경 리안갤러리 큐레이터는 "미술관은 소장품으로 말한다."며 소장품 확보와 관리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미술인들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만한 작품이 있다면 불리한 입지 조건도 충분히 극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대구시립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도 얼마 전 기자와의 대화에서 "국내 어느 미술관을 가도 비슷한 작품을 소장해 아무런 특성도 드러나지 않는다."며 미술관이 개성을 지녀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지만, 일단 세계적인 작품을 구입해 미술관을 알릴 수도 있다. 이는 곧 미술관, 나아가 시의 자산이 되기도 한다. 이장우 대구미술협회 회장은 "얼마 전 방문한 일본 센다이 미술관의 소장 조각품은 대부분 세계 유명 작가 작품이었다. 일본 경기 활황 때 구매한 작품인데 십수 년이 지나니 결국 시의 자산이 늘어난 셈"이라는 예를 들었다. 좋은 작품 확보를 위해 소장품 판매도 가능하게 한 미국의 모마(뉴욕현대미술관)의 사례를 드는 이도 있다.

◆아무 작품이나 받아서야

이를 위해서는 미술관의 소장품 수집 정책을 확실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예산상의 한계를 '기증 및 기탁'으로 보완할 계획인 시로서는 작품 기증 선정 및 수락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작품을 기증한다고 무턱대고 받았다가 결국 작품 관리비가 가치보다 더 나가는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식 영남대 교수는 "미술관 소장품 구입 초기 단계부터 기증을 적극 유도한다는 것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라면서 "그냥 하나의 방편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혜경 큐레이터는 "모마는 작품 유지비가 더 드는 경우나 기증자가 단서 조항을 많이 달 경우 등에 대한 방침이 있다."면서 기증품 관리를 철저히 해줄 것을 주문했다.

◆관장·학예연구사 역할

미술관을 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술관장과 학예연구사가 해야 할 일이 막중하다. 무엇보다 학예연구사는 좋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전시를 기획해야 한다. 이는 시 예산으로 운영될 시립미술관의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관람객이 찾도록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는 "민간투자사업인 대구시립미술관은 '예산 낭비 없이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관객몰이 성공 방법(좋은 기획)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함께 관장은 학예연구사의 전문지식을 이해하고 정책 입안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미술관의 존립근거를 이해시키고 안정적인 운영재원 확보에 힘써야 한다. '행정가로서의 자질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김혜경 큐레이터는 "뉴욕의 브루클린박물관이 설립 100년째 되던 해 정식 미술관 명칭을 부여받은 것도 관장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며 관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관장 후보군을 "지역을 넘어 세계로까지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만큼 개관 후 미술관의 위상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 관장의 역할이 중대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명예직인 관장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다는 소문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섞여 있다.

◆미술관 운영주체 간 소통

이런 과정에서 관장과 학예연구사 간의 원활한 소통도 중요하다. 강선학 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대구문화 7월호 기고에서 "조직 내의 불화로 인해 소모적 형태의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전횡의 우려에 노출된 관장 업무의 견제와 운영의 유연성을 위한 법적 장치'와 '기획전담부서인 학예실의 능동적 업무수행이 보장되는 법적 장치'도 수반 조건으로 달았다. 대구시립미술관 기공식에서 만난 미술 전문 월간지 기자도 "'비전문가인 공무원이 전문가 집단인 학예실 위에서 군림하려 든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대구도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합심해야 가능

큐레이터이자 전시기획자인 박소영 씨는 "대구시립미술관을 구태의연하게 추구하다 보면 결국 '향토미술관'에 머물게 될 것"이라면서 대구시의 접근 자세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문했다. 기공식 이전부터 학예연구사를 통해 개관 준비를 하고, 내년 초 개관추진팀을 꾸려 미술관 개관 업무를 챙겨 나가겠다는 시의 행보는 이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미술인들은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작품을 전시하고 넣겠다거나, 자리에 더 관심이 있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정말 괜찮은 시립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 '정말 무엇이 대구의 미술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뜻을 모아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사람은 찾지 않고 한 해 수십억 예산만 쏟아붓는 애물단지가 될지, '문화도시 대구'를 제대로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지는 결국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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