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 건축가 김경호 아삶공 대표

자연-인간-건축이 어울리는 공간 위해…

▲ 김경호 아삶공 종합건설(주) 이사는 항상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 김경호 아삶공 종합건설(주) 이사는 항상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 경산 아삶공 전경
▲ 경산 아삶공 전경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오후 경주 보문단지의 경주 아삶공 밀(Mill)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9월 말부터 진행할 전국 6개 도시 작가전 진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경매 행사였다. 이날 경매 물품은 모두 작가들이 무료로 내준 것이다. 건축가인 김경호(40) 아삶공 대표의 건축 철학에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건축'이라는 주제 아래 '관계를 통해 의미가 살아나는 건축'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펼치고 있는 인물. 경북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에 위치한 경산 아삶공은 이러한 김 대표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김 대표는 이 공간을 '공간(共間)'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간의 예(禮)를 갖춘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라는 모토 아래 아무나 와서 머물 수 있는 모두의 장소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삶공'이란 명칭 또한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줄여서 김 대표가 직접 지은 말이다.

김 대표는 시골길에 흔히 보이는 전원주택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주변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과 설계, 이로 인한 자연 파괴' 때문이다. 김 대표가 추구하는 '어울림의 공간'은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환경과 친화하는 장면이 바로 이상적인 건축 공간이다. 이런 면에서 도심에서 자행되는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기'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옛날 건물의 풍치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생활 공간으로 충분히 변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주된 관심대상은 현대적인 건물이 아니라 고(古)주택이다. "고주택은 그곳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의 추억이 가득 담긴 곳"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런 '삶의 공간'에 '재미'도 더하기 위해 김 대표는 3년간 현대 건축을 다시 보고 2년간 고건축 탐방길에 나섰다.

그 첫 결과물이 지금의 경산 아삶공이다. 수소문 끝에 찾은 사과 저장고가 그 시작 지점이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건물로 주민들이 일일이 흙을 파내고 퍼 날랐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지붕이 무너지고 다 쓰러져 가는 상황에서 집주인 할아버지가 헐어버리려 하던 곳을 멋진 황토찜질방으로 바꿨다.

공사를 하면서 나오는 폐자재는 버리지 않고 모두 재활용했다. 각목은 산길 버팀목이 됐고 기왓장은 물길을 만드는 받침이 됐다. 작업에는 여러 사람이 힘을 보탰다. 건축 실무를 배우려는 대학생도 있었고 집을 지어 보려는 일반인도 있었다. 함께 지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조성된 경산 아삶공에선 찜질방에서 찜질을 할 수도 있고, '허심정(虛心亭)'에서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네 개의 창을 통해 각기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100년 넘은 회화목에서 세월을 느껴볼 수도 있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우물물을 퍼 올릴 수도 있다.

밥도 해먹을 수 있고 옥수수나 고구마, 감자는 물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다. 야외무대 '소월대(笑月臺)'에선 영화를 볼 수도, 조그마한 공연을 즐길 수도 있다. 이런 '아름다운 삶의 공간' 조성은 경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경주 아삶공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경산과 다른 점이 있다면 뜻을 같이하는 이사들이 돈(300만 원)을 갹출했다는 점. 이 작업에도 많은 사람이 뜻을 같이했다.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친 것이다.

이제 '대안공간'으로 규정된 경주 아삶공은 찾는 사람 누구나 휴식을 취하고, 다양한 전시·공연을 열고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현재 서울 근교나 강원도 양양 등지에서도 사업을 진행 중이고, 경남 밀양에도 공간을 확보했다."고 했다.

1997년 건축의 껍데기가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건축에 아름다운 삶을 담겠다'며 연구 활동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이해를 얻지 못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진 상황이다. 사업자금이 충분치 못한 것이 현실이지만 김 대표는 "제가 조금만 덜 벌면 됩니다."라며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창(窓)과 같은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건 문(門) 같은 사람입니다"라는 이야기로 남이 하는 것을 지켜보는 '관망자'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주도자'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로하스'(LOHAS-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자.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의 지속 성장·환경을 생각하는 생활스타일)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김 대표의 소중한 꿈은 점점 더 많은 동지를 얻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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