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밥을 먹듯 책을 읽자

우리가 매일 식사를 하는 동안 수도원 식구 중 한 사람은 다 같이 들을 수 있도록 공동독서를 한다. 아침저녁에는 주로 영성적인 책들을 읽고 점심에는 잡지나 신문에서 발췌한 감동적이고 유익한 글들을 읽는데 나는 종종 딴생각 하느라고 내용을 놓칠 때도 있지만, 오랜 세월 습관이 되니 그래도 잘 듣는 편이다.

책의 좋은 구절을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할 적마다 새삼 책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얼마전 '야생초 편지'의 저자인 황대권님의 특강을 들었는데 그는 감옥의 독방에 격리되어 책 한 권 볼 수 없을 때의 고통을 이야기해 주었다.

무어라도 좋으니 읽을 것이 간절히 그리웠다고 했다. 벽에 도배된 가톨릭신문의 순교사를 낱낱이 읽은 것이 입교의 동기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에겐 활자가 넘쳐나고 책도 너무 흔해서 귀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세 끼 밥을 먹듯 책을 읽자.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TV를 아주 안 볼 수는 없겠지만 하루 30분이나 1시간 정도 TV를 끄고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자. 택시 타고 싶을 적에 한 번은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고,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한 번은 절제하여 모은 돈으로 책방에 가서 한 권의 책을 사서 읽는 생활태도를 길들인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그윽하고 향기로워질까.

여중시절 선생님이 소개해 준 이후 내가 지금까지 읽고 있는 홍응명의 '채근담', 톨스토이의 '예술과 인생',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타고르의 '인생론',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청록파 시인들의 시집들은 지금도 내게 지혜의 빛을 밝혀 주고 삶에 필요한 힘과 용기를 준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어린 시절 함께 읽었던 책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한다. 요즘은 우리의 책 읽기 습관도 너무 가볍고 얄팍해져서 정성들여 '읽는다'기보다는 건성으로 '대충 훑어보는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오랜 전통의 책방이 하나씩 문을 닫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출판가에서도 최대의 불황이라고 한숨 쉬는 소리를 들을 적 마다 책을 안 사고 안 읽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최근에 나는 해운대에 있는 해변도서관에 다녀왔다. 크지 않은 곳이었지만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도서관에서 누가 옆에 와도 모른 채 열심히 책을 읽는 학생과 주부 그리고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의 모습이 매우 진지하고 아름다워보였다.

하마터면 없어질 뻔한 위기에 처해 있던 이 도서관을 뜻있는 자원봉사자 주부들이 힘들게 지켜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고맙고 흐뭇한 마음이었다. 거실을 서재로 꾸미자는 캠페인도 좋고, 직장에서 독서모임을 만들어 활성화시키자는 방안도 좋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책 읽기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책이 곁에 없으면 밥을 안 먹은 것처럼 배고파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일이 손에 안 잡혀 괴로와하는 '책 갈망 환자'들이 되면 좋겠다. 그만 읽으라고 옆에서 말려도 책 속에 살기를 즐기는 '책벌레'들이 되면 좋겠다.

우리의 내면을 잘 가꾸고 정신세계를 고양시키기 위한 진정한 웰빙은 우선 좋은 책을 많이 읽는 일일 것이다. 근래에 읽은 정민 교수의 책 '스승의 옥편'에 맘에 드는 구절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책 한 권 때문에 인생관이 달라지고 책 한 권 때문에 삶의 우선 순위가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사실은 먹고살기 바쁜 때일수록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책 속에 제대로 먹고 올바로 사는 길이 다 나와 있다. 책 속에는 없는 것이 없다.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 그래서 책 읽기는 세상 읽기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세상 읽기도 엉망이다. 생각의 힘이 책에서 나온다. 삶의 깨달음이 책에서 나온다. 성공한 사람들 곁에는 늘 책이 있다. 그들은 아무리 바빠도 책을 달고 산다…. 책 한 권과 만나 인생이 뒤바뀐다. 책 한 권 때문에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책의 한 대목 앞에서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고, 감전된 것처럼 전율을 느낀다. 그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읽은 후의 나와 완전히 다르다.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존재 차원의 업 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해인(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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